증산교사) 의통전수관련 내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0101 (222.♡.242.189) 작성일23-05-04 20:25 조회3,019회 댓글0건본문
뒷부분에 의통전수관련 글들이 있어서 참고하시라고 올려봅니다.
이중성님의 천지개벽경과 동곡비서에도 대순전경과 거의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고 이정립님의 증산교사에는 전수과정이 상세하게, 신뢰도 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증산교사에는 특히 박공우종도님 본인만이 아실 수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천기누설)
(대순전경)9-29이날 밤에 공우(公又)를 침실로 불러들여 일러 가라사대 “네 입술에 곤륜 산(崑崙山)을 달라. 무진(戊辰) 동지(冬至)에 기두(起頭)하여 묻는 자가 있으리니 의통인패(醫統印牌) 한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3-83)
(천지개벽경)갑진편 4장
弟子ㅣ問曰世에 有戊辰己巳에 眞人이 出於海島中之說하니 可信乎잇가? 曰布我德者ㅣ起頭戊辰하노라.
(천지개벽경)기유편 제11장
曰公又아 汝난 來我하라. 月谷이 以爲하데 有秘命이라하야
潛入廳邊(잠입청변)하니 仁菴이 不知하니라.
曰公又아 來頭之勢가 病劫이 襲于世하면 汝난 何救하리오?
仁菴이 對曰 無指敎하시면 弟子ㅣ 何能救之乎잇가?
曰折紙호데 橫短縱長하고 刻木太乙呪하야 塗鏡明朱砂하야 捺之하고
每與入敎者하라. 病不能侵하리니 此爲祿表하노라.
月谷이 恐久留現露하고 聞此以退하니 仁菴이 不知하니라.
曰公又아 汝口에 掛甁하야 輕하니 掛崑崙山하라.
~
曰公又아 布我德者가 起頭戊辰冬至하나니 此爲救世之人하노라.
~
曰公又아 兩者를 捺之無數하야 存之타가 布我德者가 有來問하거든 印牌與捺紙를 傳之하라. 好而有餘者가 爲汝徒之有하노라.
(동곡비서)[一五七]이날밤에 박공우를 부르사 침실에서 함께 주무실새 심야에 공우보고 "네의 입수리에 곤륜산을 달아라. 무진년(戊辰年) 동지(冬至)에 기두하여 묻는 자가 있거든 의통인패(醫統印牌) 한벌을 전하라. 좋고 남어지는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하시니라.
(증산교사)제이십오장 동화교 개창과 대순전경 간행(155~168p)
(무진년戊辰年/1928) 스무이튿날 동지절(冬至節) 오전(午前) 한시에 이상호(李祥昊)의 집에서 신도 삼백여명이 모여 박공우(朴公又)의 집례(執禮)로 천사(天師)께 개교(開敎) 봉고치성(奉告致誠)을 올리고 교명(敎名)을 동화교(東華敎)라고 일컫을 것을 봉고선언(奉告宣言)하고 인(因)하여 최고(最高) 교임(敎任)인 통정(統正)에 이상호(李祥昊)로, 통섭(統攝)을 임경호(林敬鎬)로 선거(選擧)하여 신명(神命)으로 임명
(任命)하고 이날 정오(正午)에 백광국(白光國)의 집에서 개교식(開敎式)을 거행(擧行)하여 성명서(聲明書)와 선포문(宣布文)을 발표(發表)하고 통정(統正)과 통섭(統攝)이 각히 취임례사(就任禮辭)를 행(行)하니 이로써 동화교(東華敎)는 성립되었다.
개교식(開敎式)을 마친 사흘 후에 박공우(朴公又)가 다시 와서 상호(祥昊)를 방문하고 일러 가로대 “동지(冬至)날에는 너무 복잡(複雜)하여 말할 틈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다시 내방(來訪)하였노라. 지난 기유년(己酉年) 유월(六月) 스무 사흗날 천사(天師)께서 나를 불러들이심으로 내가 방안에 들어가서 천사(天師)를 모시고 자더니, 밤이 깊은 뒤에 천사(天師)께서 나를 부르사 의통인패(醫統印牌)의 만드는 법과 쓰는 법을 자세히 가르치시고 입술에 곤륜산(崑崙山)을 달라 하시며, 또 앞으로 돌아오는 무진년(戊辰年) 동짓날 용화동(龍華洞)에서 기두(起頭)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너는 그 때에 인패(印牌) 두벌을 만들어서 한벌은 네가 지녀 두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셨는데 천사(天師)께서 화천(化天)하신 뒤 병진년(丙辰年) 겨울에 차경석이 나를 특청(特請)하여 성대(盛待)하면서 이 사실을 묻거늘, 나는 경석의 환대(歡待)에 마음이 기쁘고 또 취흥(醉興)이 도도 (滔滔)하여 입을 열어 말하려할 즈음에 문득 공중에서 ‘천기누설(天機漏洩)’이라는 고함소리가 귀에 들려 깜짝 놀라서 술이 깸에 드디어 입을 다물고 경석의 요청을 거절하였노라. 이로부터 나는 엄숙히 비밀을 지키면서 무진년(戊辰年) 동지(冬至)만 고대(苦待)하여 왔노라. 수십일전에 나는 인패재료(印牌材料)를 구하려고 변산(邊山)을 가는 길에 태인(泰仁) 대각다리(大覺橋)에서 그대를 만남에 나는 문득 천사(天師)께서, 이 다리를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마음으로 공부를 하며 지내라고 명하신 바가 생각이 나서 이상히 여겼더니 집에 돌아오니 개교식청첩(開敎式請牒)이 와있으므로 혼자서 놀래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노라”하며 치성석(致誠席)에서 서로 주고받기를 청하거늘, 상호 허락하고 수일후에 공우를 청하여 함께 치성을 올리며 각히 한벌씩 전하여 받을새 마침 각자공(刻字工) 정수흠(鄭守欽)이 와서 두류(逗留)하는 중이므로 수흠(守欽)으로 하여금 공우의 지시대로 각(刻)하게 하였다. 이 일이 전파(傳播)됨에 김송환파와 안내성파를 비롯하여 여러파 신도들이 찾아와서 가입하는 자가 많아져 교세(敎勢)가 떨치기 시작하였다.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