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중의 육기초동량을 위한 영성 교육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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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야로 (220.♡.58.168) 작성일16-06-18 22:29 조회8,293회 댓글4건첨부파일
- 허공으로 가는 길.hwp (4.7M) 66회 다운로드 DATE : 2016-06-18 22:29:37
본문
선천을 토대로 하지 않은 후천은 있을 수 없고 하도 낙서를 배제한 용담이 있을 수 없듯이, 유불선 삼도를 기초하지 않은 현무경이 있을 수 없고 칠현무를 바탕으로하지 않는 육기초동량은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학도수라 칭하는 현무경의 인중천지를 건설하기위한 육기초동량에 대한 설명 이전에 소학이라 할 수 있는 선천 유불선의 가르침과 영성개발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를 위한 공부자료가 많이 있을 것이나 개인적으로 만든 자료를 첨부파일로 올리니 참고자료로 활용하시고 육기초동량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허공으로 가는 길
(영성교육 프로그램)
草 庵
허공으로 가는 길
서문
제 1장 수행편
Ⅰ. 공부에 들어가며
1. 티벳 성지 순례자 | 8
2. 무명(無明)과 정견(正見) | 10
3. 계.정.혜(戒. 定. 慧) | 12
4. 수행법의 종류 | 13
5. 명상자세(몸풀기와 자세) | 15
6. 챠크라와 기혈 | 16
7. 호흡법 실습 - 기 느끼기 - | 18
8. 소주천과 대주천 | 19
9. 지관은 어떻게 할까? | 21
10. 지관의 실제및 실습 | 23
11. 간화선이란? | 38
12. 돈오와 점수법 | 40
Ⅱ. 마음의 자취를 찾아서
1. 빛(파장)의 세계와 오-라장 | 41
2. 공(본체)과 색(작용)의 이해 | 46
3. 의식의 세계(현재. 잠재. 무) | 50
4. 심우도 해설 | 52
5. 견성. 성불. 열반 | 54
6. 의식의 단계 | 55
7. 의식수준 측정 | 58
8. 공부하는 방법과 순서 | 61
9. 달마대사와 혜가 | 64
10. 사라하의 노래 | 67
11. 티벳 불교의 아버지 파드마삼바바 | 71
12. 유도와 불도와 선도의 만남 | 74
Ⅲ. 하나된 마음
1. 조주선사의 화두(무) | 80
2. 임제선사의 할 | 81
3. 깨달음의 향기(진묵대사 오도송) | 82
4. 4 법계관 | 84
5. 화엄경의 십지 | 84
6.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 | 86
7. 나는 누구인가? | 89
8. 선문염송(1700 공안)에 대하여 | 93
9. 선문염송 중 3처 전심 | 95
10. 반야심경 해설 | 95
11. 금강경 소개 | 97
12. 법화경, 전심법요 소개 | 98
제 2장. 원리편
Ⅰ. 우주원리의 기초
1. 본체(空)와 작용(色)의 관계 | 100
2. 집일함삼. 회삼귀일 | 101
3. 삼극(무극 태극 황극)의 해설 | 103
4. 음양 오행 | 104
5. 오행 상생 상극의 원리 | 106
6. 수의 비밀 | 108
7. 괘 해설 | 109
8. 8괘와 9궁 | 110
9. 10 천간 | 111
10. 12 지지 | 112
11. 우주 대원리의 통찰 | 113
12. 우주변화의 원리 소개 | 114
Ⅱ. 현상계에 투영된 원리
1. 하도와 복희8괘 해설 | 116
2. 낙서와 문왕8괘 해설 | 118
3. 8괘시(八卦詩) 해설 | 120
4. 정역 8괘 | 123
5. 용담역이란? | 125
6. 정역과 용담역의 비교 | 127
7. 3역의 괘의 변화 | 128
8. 3역의 간지의 변화 | 129
9. 3역에서 연월일시가 나오는 원리 | 131
10. 3역의 수의 변화 | 133
Ⅲ. 천지의 흐름과 마음의 조화
1. 현무경 소개 | 135
2. 무위의 정치(靈符) | 139
3. 구궁 운행법(자성 속 천지운행) | 142
4. 격암유록과 정감록의 십승지 | 143
5. 우주와 인간 | 146
6. 괘와 얼굴의 신비 | 147
7. 오장 육부와 인체의 이치 | 151
8. 8괘와 28수에 따른 방위 분류 | 154
9. 천지사상 강유설 해설 | 156
10. 천부경 지부경과 현무경 | 157
제 3장. 현상편
Ⅰ. 북극성계의 운행
1. 북극성계의 운행 | 162
2. 북극성 북두칠성과 28수 | 163
3. 원회운세 | 166
4. 황도 12궁 | 167
5. 북극성계 속의 지구의 역할 | 169
6. 천지는 만물의 도량 | 171
7. 별과 인류의 삶의 관계 | 173
8. 현대과학, 동양학을 여행할 채비를 갖추다. | 175
Ⅱ. 천지는 살아있는 생명체
1. 우주 탄생의 축소판은 인간의 탄생 | 178
2. 우주는 살아있는 생명체 | 180
3. 우주 신경망과 인간의 신경계 | 182
4. 정기신의 관계(혼 백 영) | 183
5. 심령과학과 하이즈빌 사건 | 185
6. 11인 조사단(초인들의 삶. 초인생활 소개) | 186
7. 엑토 플라즘과 오컬트 현상 | 188
8. 심령세계의 구조와 기능 | 190
9. 동물도 말을 한다 소개 | 194
10. 장미의 부름 소개 | 195
11.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소개 | 196
Ⅲ. 지구의 상승과 미래
1. 대행스님이 증언한 우주인의 실상 | 199
2. 우주인이 증언한 지구의 역사와 현 위치 | 202
3. 지구대변혁의 의미와 변화현상 | 204
4. 우주인의 공식접촉과 태양계의 포톤벨트 진입 | 205
5. 우주선의 종류와 운행법 | 206
6. 지구의 대변혁과 변화후의 지구모습 | 207
7. 은하사회로의 복귀와 지구인의 상승 | 209
8. 미래는 도술운통의 신선세계 | 212
9. 미래의 준비 | 214
- 서 문 -
지구는 깨달음의 별이라고 합니다. 한 영혼이 지구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7~80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루어야 할 지고의 목적은 곧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생을 살아가며 그가 해야 될 일이 인간완성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여 생전에 어떤 일을 했든 깨달음을 이루지 못했다면, 죽은 후에는 학생이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지구상을 다녀간 위대한 영혼들은 하나같이 이 생이 모든 것이 아니며, 다만 자기완성을 위해 다음 다음 생을 통하여 학습해가는 한 여정에 불과한데 이를 윤회의 수레바퀴로 비유하였습니다. 오직 깨달은 영혼만이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있으며 그 후엔 더 높은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학교에서는 인간완성을 위한 교육은 뒷전에 밀려난 지 오래이며, 어려서부터 생존경쟁을 통한 직업교육만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을 대량 양산하고 있고, 종교단체 역시 깨달음을 위한 공부는 뒷전에 밀려나고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교리만 가르치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는데 급급하므로 곳곳에 함정이 숨겨져 있어 함부로 뛰어들다간 자기완성은 커녕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우를 범하기 십상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은 유불선 3도를 하나로 인식하고 가르침을 펴 왔는바, 세계화의 급물살에 대부분 정신을 빼앗기고 이제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해 왔는데 몇몇 위대한 영혼들의 출현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정신문화를 세우게 되었으니 자세한 공부는 개인적으로 더 깊이 해야 할 것이며, 이 교육안은 본체를 싸고 있는 겉모습만 조금 따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교육안이 비록 간단하긴 하지만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한 수행방법과 자기완성(대아, 부처, 신, 오심이 천심, 우주와의 합일)을 이룰 수 있는 몇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천지만물의 변화법칙을 익히고 이를 다스리는 이심전심의 정치대법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앞 세상에 대한 준비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길을 제시해주는 지침서의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훌륭한 미사려구를 사용한 교육안이라 할지라도 가리키고 있는 길이 바르게 제시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폐해를 입히는 글이 되고 말 것이요, 비록 그 내용이 충실치 못하고 문장이 아름답지 못하다 할지라도 가리키고 있는 길이 바르다면 그건 훌륭한 스승을 만남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이 글들의 내용이 결코 아름답지도 않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쓴 글도 많으며 앞뒤로 연결되는 문장이 어색하다 하더라도 가리키는 대체적인 길만은 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세세한 내용에 있어서 진리와 거리가 먼 것들이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음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건 개인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므로 그러한 개연성을 굳이 막고 싶지는 않습니다.
본 교재에서는 공부하는 내용을 수행편과 원리편 현상편으로 나누어 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수행편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모래성을 쌓는 일과 같아서 공부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행편이 불도에 치우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는 개인이 수행해 나가는데 가장 체계가 바르게 서고 단계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과 문제점을 바르게 지적하고 길을 헛디디지 않도록 설명을 해주고 있는 가르침이 불도이므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을 뿐입니다.
건물을 세우는데 주춧돌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을 강조해서는 바른 건물이 세워지지 않듯이 수행이 공부의 기초를 세우는데 있어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될 일임은 자명한 일이나, 원리와 현상편 역시 중요한 공부의 자료이므로 어느 한편에 기울어지는 공부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진정으로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종교라는 틀에 얽매어서는 안될 것이며, 여기에 쓰여진 많은 글들이 비록 종교색이 짙다고 느껴지겠지만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모든 존재가 스승이며 위대한 성인들을 바라볼 때 종교라는 색체를 배제하고 말씀 속에 들어있는 가르침의 정수를 뽑아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자신이야말로 자성(自性. 明)을 갖춘 신이나 부처와 같은 존재이며, 모든 가르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귀중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교육안을 통하여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면 그로써 이 글들은 제 역할을 충분히 다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좀 더 깊은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은 관련 서적들을 통하여 공부해 나가시길 바라며, 부디 크게 마음을 열어서 깨우침의 행렬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草庵 합장.
제 1장 수행편
(접힌세계<空>의 탐구)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만물의 삶의 길을 터주고, 어린 영혼들을 돌봐주며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인간이 만물 위에 군림하고 어린 영혼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마음대로 전권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생명체는 제각기 한 영혼으로서 서로 다른 옷(신체)을 입고 주어진 역할에 따라 공부해 나가는 어린 학생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모습만 사람이라고 하여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하여도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는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에서 나온 이웃이며 자신 역시 하나에서 나왔고 그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이루고 만물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할 채비를 갖춘 사람만이 비로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짧은 시간동안 자신이 돈과 세상적인 명예와 권력을 얻었다하여 그것이 영원히 갈 것이라는 생각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하는 소꿉놀이와 같은 것입니다. 영원의 세계에서 볼 때 이 세상의 시간은 한 호흡사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영혼들은 세상적인 영화를 버리고 영원의 세계를 찾아 고난의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세속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수행의 길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큰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한 생을 다 바쳐도 자기 완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보장은 없습니다. 그만큼 이 길은 어렵고 멀고 험난한 길입니다. 그러나 한 번 깨닫게 되면 마치 고치에서 나비가 껍질을 깨고 날아가듯 그에게는 영원한 대 자유인의 길 즉 해탈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깨달음의 세계에 들었다고 하나 모두가 같지는 않습니다. 마음이란 양파껍질처럼 수많은 겹을 이루고 있으니, 한 번의 깨달음은 마음의 한 껍질을 벗긴 것에 비유 될 수 있고, 작은 깨달음이 모여 큰 깨달음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더 큰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마치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마음의 크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생명의 여정은 끝이 없습니다. 우주조차도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정보를 모아 좀 더 나은 세계를 빚어내는 노정에 있다는 말도 있으니 무한의 세계란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현묘한 곳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에 주어진 지고의 목적은 영적 성장을 통한 자기 완성이며, 마음의 그릇을 틔워 무한의 세계에 들어가 우주와 함께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라 할 수 있으며 오직 생물 중 인간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가치는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영생의 길에서 멀어진다면 그는 다시 낮은 세계로 떨어져 값진 기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높은 세계로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위대한 스승들 중 누구도 수행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은 분은 없습니다. 오직 수행하는 것만이 높은 세계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Ⅰ. 공부에 들어가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게 가장 가치있고 뜻있는 삶인가에 대한 논의는 결코 하루 이틀동안 제기되어온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이는 70~80년이라는 기간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므로 즐겁게 사는 일이야말로 주어진 삶을 가장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인생이란 무한한 시간 속에 잠시 들렀다가는 정류장이라고 생각하고 흔적을 남기는 일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든 그건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길이므로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가 하는 일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결국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고 있고, 마음 그릇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소꿉장난을 하더라도 그 아이에게는 결코 장난이 아니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무언가를 채우고자하는 욕망이 있으며, 그것이 채워질 때까지 계속 하다가 다 채워지면 더 큰 새로운 것에 관심을 돌립니다. 그건 마치 어린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특히 물질적인 것)을 주변으로부터 끌어 모아가며 형체를 키워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진은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으며 물질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대 전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길이 바로 정신을 살찌우는 길입니다.
물질을 추구하는 길이 자신을 키우기 위해 정해진 에너지를 주변으로부터 흡수해야 하므로 경쟁을 통해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길이라고 한다면, 정신의 길은 모든 존재는 하나에서 나온 같은 하나이므로 서로 잘되고 서로 잘 사는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봉사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모든 존재가 어린 영혼들이라고 한다면 깨달음을 이룬 존재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성인 군자나 위대한 스승들로 칭합니다. 그들은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며 근본적인 것을 가르칩니다. 어린 영혼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도중에 나타날 위험을 피할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누구나 공부의 여정에 있으나 미로 속을 헤매다가 오히려 함정에 빠져 멀리 돌아갈 수도 있고, 험한 길을 피하려다 다람쥐 쳇바퀴 속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이 필요하고 지침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할 일과 선택해서 해도 될 일이 있습니다. 공부란 반드시 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으로 태어난 지고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학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도외시하고 돈이나 명예 권력 등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일에 치우쳐 근본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지침을 통해 근본을 찾고 진정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티벳 성지 순례자
고난과 역경을 딛고 길을 찾는 자에게 바른 길은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지극히 주관적인 길이며, 오직 체험만이 통하는 어려운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헤쳐 가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단편적이나마 TV방영을 했던 티벳 성지순례자들의 일정을 통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순례자의 일정을 보면 숭고한 인간 승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년동안 준비하여 1년여에 걸친 순례 행진은 무엇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스스로 자처하여 행하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그동안 자신의 나태한 생활을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순례자들은 이 행진을 마치고 하나같이 영적인 충만감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본다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크나큰 평온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티벳 성지 순례자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티벳 불교신자들이 티벳의 불교 성지인 라싸에 이르는 2100km의 길을 5보 1배(1배는 오체투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땅에 닿는 절)를 하며 걷는 모습을 ‘차마고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따라가며 취재한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의 거리가 3천리(방방곡곡)이고, 10리를 4km로 계산하니 3천리는 1200km이므로 이들의 순례한 거리는 대략 우리나라 상하 끝까지의 거리의 두배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5000km에 이르는 거리를 성지순례 한다고 하니 그 경우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단 취재 대상들의 행보를 보면 2100km를 5보 1배하며 걷는데, 매일 올라가는 길은 약 6km씩 가고, 내려가는 길은 약 10km씩 가서 총 6개월 쯤 걸린다고 합니다. 성지에 도착하면 사원에서 다시 10만배를 하는데 1일 약 2~3천배하여 한두달 가량이 걸리며 모두 마치면 8개월의 대장정이 끝나게 되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이 있으니 전체적으로 걸리는 기간은 약 1년은 잡아야 할 듯합니다.
취재를 허락한 사람들은 5인이 1조가 되어 순례의 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세사람은 5보 1배를 하고 두명은 먹을 것과 잠잘 것 등 순례에 필요한 것들을 수레에 태워 직접 끌고 갔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티벳으로 가는 길은 험준한 산길이며 보통 2000m 이상되는 고도의 길을 따라 걷기도 하는데, 높은 지역은 5000m 높이의 길을 넘기도 해야 합니다.
절(오체투지)을 할때는 땅에 바로 손을 대면 먼 길을 계속 갈 수가 없어서 나막신같은 나무로 만든 것을 손에 끼고 땅에 엎드리는데, 가슴을 보호하기위해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 같은 옷을 5~8벌 정도를 준비해서 가는데, 헤지고 닳아져 더 이상 입을 수 없으면 갈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중도에 그들의 신체를 촬영했는데 이마가 땅에 닿으니 처음엔 부풀어 오르다가 피가 터져 나오고 그래도 계속 찍어대니 나중엔 굳은 살이 박혀 단단해져 있었고, 팔굽과 무릎은 보기 흉할 정도로 여기저기 부풀어 올라 굳은 살이 박혀 마치 벌에 쏘여 부풀어 오른 살더미가 여기저기 모여 있었습니다.
어쩌다 일반인들을 만나면 이들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조그만 절에서 수행하는 활불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들에게서 설법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6개월 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마침내 라싸에 도착했는데, 라싸에는 티벳불교의 성지로서 상징되는 곳이 세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티벳의 궁전인 포탈라궁이고, 또 한곳은 협곡으로서 티벳에 불교를 전파하여 부처로 숭앙받고 있는 티벳불교의 아버지인 파드마삼바바를 모신 곳이며, 나머지 한 곳은 티벳 불교를 대표하는 사원입니다.
이들은 사원에 들어가서 역시 오체투지로 한두달 동안에 10만배를 한 후 긴 성지 순례의 길을 마칩니다. 이들 중 두명은 승려의 길을 걷고, 한명은 직장을 갖고 일반인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짐꾼 두명은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의 삶과 극단을 가리키는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바람직한 일이고, 어떤 것이 실존이고 어떤것이 허상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 시간의 기다림도 채 견디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 역시 하루살이처럼 가벼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한번 더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길에 참가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순례의 길을 평생에 한번이라도 다녀오는 것을 영광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비록 우리들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하루 하루를 짧게 살아가고 있지만, 한번쯤은 인생의 긴 여정 중에 자신을 돌아보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 무명(無明. 12緣起의 첫째)과 정견(正見. 8正道의 첫째)
수행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입니까?
-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 대 천지를 담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이 나오기 전의 바탕자리(空)입니다. 시방(十方. 상하팔방)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우주를 펼친 근본자리입니다.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깨닫기 전과 무엇이 달라집니까?
- 깨닫기 전에는 중생이지만 깨닫고 나면 부처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부처라고 생각하면 됩니까?
- 생각이란 칠판에 쓰여진 글씨처럼 쓰기도 하지만 지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한 번 기록되면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 각인과 같은 것입니다.
생각이란 실상입니까? 허상입니까?
- 생각이란 마음상태의 표현일 뿐입니다.
마음 자체와 마음 상태는 전혀 다른 표현입니다. 마음 자체를 거울이라 한다면 마음 상태는 깨끗한 거울 또는 더러운 거울처럼 치장된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자체를 불성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나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그러나 마음 상태는 아무도 같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하늘이 얼마나 클까?’란 말을 듣고 3살짜리 어린아이는 자신의 집 천정만한 크기를 생각하지만 어른들이라면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을 생각할 것입니다. 3살먹은 아이와 어른과의 차이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부처와 중생은 서로 갈라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거나 크더라도 거울은 거울이므로 모든 존재는 불성(부처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란 마음의 상태가 지극히 맑고 순수하여 치장되지 않은 거울 자체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구름이 끼지 않은 하늘로도 비유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넓게 깊게 명확히 볼 수 있으므로 이를 명(明. 밝을 명)이라고 합니다. 대학(유교)에서는 이것을 명명덕(明明德. 밝은 덕을 밝히다)이라 하여 순수한 마음을 밝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세계는 모든 것을 환히 아는 세계로서 명(明. 해탈)을 이룬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마음의 거울에 먼지가 끼어 세상을 밝게 보지 못한 상태를 명이 없는 상태 즉, 무명(無明)이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와 중생의 갈림길이 곧 명과 무명인 것입니다. 이를 어리석음과 현명함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명과 무명은 선과 악의 개념은 아니지만 무명으로 인해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고, 명으로 인하여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된다면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무명으로 인해 악연을 만들어 내면 연기법(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남)에 의해 나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명이 밝음으로 표현되듯이 무명은 어둠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동굴 속 같은 어둠이라도 불을 켜면 일순간에 밝아지듯이 모든 중생은 누구나 일순간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악연(나쁜 원인에 의한 나쁜 결과)은 그 뿌리가 바로 무명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무명을 명으로 바꾸기 위한 방법이 수행하는 것이며 수행 또는 명상을 통해 마음을 보다 안정시키거나 닦아나간다면 세상을 바르게 보기(正見) 시작하고 마침내 대 지혜인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한다면 실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결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윤회의 세계를 탈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12연기설(十二緣起說): 이 세상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끊임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윤회하는데 이를 벗어나지(해탈)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곧 12단계의 원인에 의해서인데 그 첫째가 무명입니다. 무명을 끊으면 곧 해탈입니다.
*** 8정도(八正道): 수행하여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8가지 바른 가르침이 있는데, 그 첫째가 정견(正見. 진리를 바르게 봄)입니다. 8정도의 종류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정신집중(正定)입니다.
3. 계.정.혜(戒. 定. 慧)
계(戒)란 계율을 의미합니다. 정(定)이란 마음을 굳건히 지킴을 뜻하며 혜(慧)란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계율은 정을 이루기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고, 정이란 혜를 갖기위한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키고 닦아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짜릿한 쾌락에서부터 남 위에 지속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수많은 욕망들이 바로 옆에서 유혹합니다. 사회의 법이란 소극적인 계율에 속합니다. 만약 한 인간이 자신이 하고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법조차도 그의 행동아래에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일화를 보아왔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이 세상은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조화가 깨지면 세상은 어지럽혀집니다. 어지럽혀진 세상에서 진실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결코 실상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건 마치 수면이 바람에 흔들리면 물 속에 있는 사물이 찌그러져 보임과 같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定)을 갖기 위해 스스로나 또는 타의에 의해 자신을 구속시키는 것이 계율입니다.
혼자 힘으로 정(定. 굳건한 마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룰 수만 있다면 계는 굳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가끔 고승들 가운데 술을 몸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돌아다녀서 계율을 파기했음에도, 원효대사처럼 부녀자를 취해 선승으로서 해서는 안될 큰 계율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승이나 대사로서 인정한 경우는 외적인 요인에 의하여 정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지혜(깨달음)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소수 천재들의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대부분의 경우는 계율을 어기면 굳건히 지켜야할 마음이 흐트러지기 마련이고, 흐트러진 마음에 바른 지혜가 드러날리 만무한 것이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산문에서 쫓아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계율을 통해 마음을 지켜왔고, 마음을 지킨 연후에 깨달음에 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가정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면서 지혜를 밝힌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가정을 버리고 오직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제 2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비록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마음을 지키며 진리를 밝힐 수는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른 점은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삶이 거의 결정되지만 오직 인간만은 환경의 변화보다 의지의 작용에 따라 환경조차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강하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해 나갈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세상 또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의지를 강하게 갖고 마음을 지킬 수만 있다면 지혜의 길은 열릴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다면 출가자 재가자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이의 거처한 곳이 곧 불당이고, 깨달음을 얻은 이의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입니다(心則是佛).
일반적으로 수행을 하거나 명상에 들어 정(定)을 이루고, 깨달음(慧)을 이룬 스승들의 말씀을 통해 바른 길을 가야하므로 정(定)과 혜(慧)는 동시에 닦아나가야 하므로 정혜쌍수(定慧雙修. 깨달음을 이룬 분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수행을 해 나가야 어긋남이 없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수행법의 종류(호흡법, 관법, 간화선법, 염불, 주문, 기도등)
수행이란 마음을 맑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고(正見), 참 나를 체험하는 것(見性. 하나를 느낌)이며, 더 나아가 내가 개인적인 나를 벗고 '참 나'가 되는 것임(成佛, 하나됨)과 동시에 '참 나'로 살아가며 세상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일(涅盤)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는 수행 방법으로 각 종교의 교리와 명상단체의 수행법 그리고 요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법이 있으나, 이 모두 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들이며 그 목적이 다른 데 있다면 그것은 바른 수행방법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목적이
첫째, 건강을 위하여
둘째, 개인의 안위를 위하여
셋째, 가족과 나와 관계있는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위하여
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위와같은 일들은 수행을 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부수적인 이삭줍기에 해당 될 것입니다. 수행이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기 위한 행동(큰 것 속에는 작은 것도 포함됨)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사실 명상 방법만 하더라도 수백가지가 있으며, 이러한 명상법 중에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맞는가를 알려면 한가지 방법을 가지고 최소 3개월 이상은 수행을 해 보아야 하며, 그렇게 하다가는 평생을 취사선택하는데 보내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선택하는데 평생을 보낸다면 언제 수행다운 수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현들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 인류를 이끌어온 성인들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대표적인 수행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불도의 방법으로 간화선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화두(말이 끊어진 자리)를 들어 의심덩어리가 되고 이를 타파하는 방법이며, 중국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불도의 방법인 지관법은 마음을 관찰(觀察)하여 떠오르는 생각을 제거하여 비워나가는 방법입니다. 선도에서 행해지는 수행법은 의식을 호흡에 두고 면면히 복식 호흡하여 시간을 점점 늘여가며 축기(하단전-배꼽및 3cm- 에 기를 축적함)를 한 후 신(의식)으로 기를 뜻대로 운용하여 임.독맥의 양 혈을 뚫어 도를 이루는 법으로서 선도의 비법으로 통하며, 참동계, 혜명경, 용호비결 등의 대표적인 선도 비결서에 이러한 방법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 중 선도의 최고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참동계에서는 <뜻을 다 맡겨 허에 돌림으로써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생각조차 없는 경지가 상례가 되게하라>하여 마음을 비워 무위(無爲)로 행하는 함없는 함이 최선의 방법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최고의 경지에서는 유불선의 수행방법이 모두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 호흡사이의 순간적인 정지 점에서 의식을 멈추어 마음을 쉬게 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방법, 의식을 상단전(인당: 눈썹과 눈썹사이의 평평한 곳)에 두다가 다시 중단전(좌우 가슴뼈 사이, 내부로 약 5cm)에 두어서 빛을 키워나가는 태을금화종지(여동빈), 백회혈(머리 꼭대기) 위 쪽에 백열광(태양)을 두고 용천혈(발바닥) 아래 쪽에 바다(태음)를 두어 담금질로 몸을 단련하여 혈을 뚫는 음양교접법(티벳밀교비법: 라즈니쉬 저 황금꽃의 비밀 중), 태양의 빛을 받아 지구 중심에 흘려보내고 다시 지구 중심으로부터 기운을 받아 태양에 보내는 카 활성법(플레이아데스 우주인의 수도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샤스타산에 도장을 열고 수행함. <빛의시대 빛의인간> 대원출판사 참고) 등이 있으며, 112가지 명상비법(라즈니쉬 일지사)을 기록한 불교 탄트라, 기도나 주문 염불을 통하여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므로서 비우는 방법 등. 수행법은 수없이 많으나 그 목적은 하나 즉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취하여 하나됨(한마음, 一心)을 이루는 일입니다.
사람이 수행하여 아무리 힘을 키운다한들 로보트보다 못할 것이요, 축지술을 배워 뛴다한들 우주선보다 더 빠를 수는 없을 것이며, 건강을 지키고자 한들 100년을 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성현들께서는 기행이적을 행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달콤한 말과 이적을 통하여 사람들을 유혹하는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가르침을 따르되 깨달음을 얻어 내가 곧 부처(신)임을 알며, 한마음이 되어 우주와 통하고, 마음을 키워서 비겁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힘을 쓴다면 그보다 더한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5. 명상자세(몸풀기와 자세)
화두를 들거나 관을 하거나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의식이 내면을 향하고 있어야 하며 세상을 심안으로 보아야만이 세상과 내가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생활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의식을 내면으로 돌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계획을 짜서 시간에 맞추어 규칙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풀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 중심에 두려는 것이지 규칙적인 생활 자체가 목적이 아닌데, 거기에 너무 얽매이다보면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일반인들의 경우엔 수행생활이 매우 힘들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건 마음의 중심을 바로잡아 심등을 켜는 것이므로 절차에 너무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체적 자세가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좋은 방편은 분명 있으므로 굳이 명상자세를 말한다면 행(가고)주(서고)좌(앉고)와(누운)선(禪 )중에서 주로 좌선(앉아서 명상을 함)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좌선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좌선의 경우 약간씩 자세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공통적인 의견은 척추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척추가 휘어지면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깊은 명상에 빠져 들 수 없으며, 기가 흐르는 길이 막히게 되므로 내장에 무리가 가서 내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허리는 반듯이 펴야하는 것입니다.
눈은 감거나 반쯤 열어 내부의 빛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밖의 빛을 내부로 돌려 심안으로 마음의 중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심안으로 마음을 볼 때 가르치는 방법이 약간 차이가 나나 대체로 상, 중, 하단전의 셋 중 두가지를 쓰는데, 상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은 맨 처음 기를 느끼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것은 괜찮으나 오랜시간 집중하면 기의 흐름이 머리 위쪽에서만 돌므로 머리가 아파오고 심하면 정신을 훼손케 되는데 이는 마치 오랫동안 햇빛을 한곳에 집중적으로 쬐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안전한 방법으로 중단전이나 하단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중단전의 경우 불도에서 많이 쓰고 혜명경 등 일부 선도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으로 상하단전을 긴밀히 연결하여 영육병진 하는 방법입니다. 하단전의 경우 선도에서 많이 쓰고 불도에서도 널리 쓰는 방법으로 정기신(精氣神)의 순서로 기본 바탕인 정(精)을 굳히면 기(氣)가 강해지고 기가 강해져서 신(神)을 열어나가는 방법입니다. 중요한 건 개인의 근기에 따라 방법도 달라져야 하므로 두가지 방법중 자신에 맞는 방법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다리는 반가부좌, 결가부좌, 양반자세, 무릎꿇기 등이 있는데, 결가부좌는 오랫동안 수행을 한 사람이 아니라면 다리의 아픔과 기혈의 막힘 때문에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고, 무릎 꿇기 역시 단시간은 괜찮으나 장시간은 버티기 힘든 방법입니다. 대체로 반가부좌와 양반자세를 많이 하는데 반가부좌는 한 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를 누르므로 오장의 한쪽이 쏠림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합니다. 자세에 있어 모두가 방편이므로 개인에 따라 편한 방법을 취하면 될 것이요, 중요한 건 몸의 자세보다 마음의 수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6. 챠크라와 기혈
챠크라란 인도의 범어로서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혈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혈자리란 몸의 각 부위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12경맥(12가지로 분류하는 혈의 모임. 여러 개의 산을 연결한 것을 산맥이라고 하듯이 혈의 모임을 경또는 맥이라고 함) 중 대표되는 임맥과 독맥을 구성하는 혈자리 등 우리 몸에는 수많은 혈자리들이 있으며 그 중 정기신을 통하여 지혜의 문을 열어나가는 혈자리(챠크라)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몸 중 등뼈(척추)는 몸을 지탱해주는 역할 외에 두뇌와 내장기관 등 신체의 상하좌우를 신경계로 서로 연결해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척추에 있는 혈자리(챠크라)가 열리게 되면 신체 상중하의 모든 기운이 서로 통하게 되고 마침내 천지 기운과 상응하게 되어 대 지혜가 열립니다. 수행을 하는데 호흡을 하거나 의식을 내면에 집중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본다면 바로 이 챠크라를 여는 행위에 해당되며, 7개의 챠크라가 차례로 열리게 되면 마침내 자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음은 수행을 통하여 챠크라를 열기위한 모습을 가상 도면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때 의식이란 심안(마음으로 보는 눈)을 의미하며 그 방향은 반드시 내면으로 향해야 합니다.
<챠크라와 의식의 진행방향 도해(圖解) >
기존 수행자(불교,기독교,유교, 선교 등) 들이나 뉴 에이지 수행자(우주인 메시지, 초인생활, 신나이, 람타, 라즈니쉬 등)들은 제 4챠크라<중단전>나 제 5챠크라를 의식의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가나 국선도 등에서는 제 2챠크라<하단전>를 중심으로 수행하는데 이는 신체를 단련하여 차차 더 높은 단계로 올라 가기위한 뜻이므로, 개인의 신체 상황이나 선호에 따라 2나 4 또는 5 챠크라를 목표로 두면 무난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래는 도해에 기록된 번호에 해당되는 챠크라의 명칭입니다.
1) 제1챠크라 - 회음부 - 선골 신경총
2) 제2챠크라 - 아래 뒤쪽(하단전) - 전립선 신경총
3) 제3챠크라 - 위 뒤쪽(중단전) - 태양 신경총
4) 제4챠크라 - 심장 주변 - 심장 신경총
5) 제5챠크라 - 인후 부위 - 후두 신경총
6) 제6챠크라 - 양미간(인당:상단전) - 동굴 신경총
7) 제7챠크라 - 정수리(백회혈) - 송과선
선도 수행 또는 티벳 불도의 탄트라 수행 중 호흡을 통하여 몸(身. 精)을 연단하고 이에 의해 불사약(연금술에 의해 채약함)을 얻어 살아있는 몸으로 신선이 되는 법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깨달음(心性. 자성을 깨우침)과 불로불사(命. 영생)를 함께 얻는 법으로서 이를 일컬어 성명쌍수(性命雙修. 心身을 함께 닦음)라 합니다. 신발을 벗어놓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최치원 선생이나 죽은 후 부활을 했다는 예수성자의 일화는 곧 성명을 함께 닦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일입니다. 성명쌍수를 부르짖는 선도 비경인 참동계나 혜명경 역시 수행법의 기본은 다르지 않습니다.
7. 호흡법 실습(인체는 배터리) - 기 느끼기 -
혼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단체와 조직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일은 남의 독단에 휘둘릴 위험에 빠질 염려가 있습니다.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혼자서 공부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습니다. 인생이 주변의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혼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처럼 공부 역시 다른 이들과 함께 하지만 결국은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혼자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모든 주변의 존재들은 나의 공부를 도와주는 도우미로서의 역할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나 또한 다른 존재들을 도와주는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른 존재에 의해 지배를 받아서도 안되지만 다른 존재를 내 마음대로 조종할려고 해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수행하는 방법 중 가장 쉽고도 많이 알려진 방법으로 호흡법을 실제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뜻이 맞는 몇 사람과 함께 하면 더욱 좋지만 혼자서 하더라도 전혀 어려움은 없습니다.
먼저 몸 풀기를 합니다. 온 몸의 기관이 풀리도록 하십시오. 요가나 국민체조 또는 스트레칭을 해도 좋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온 몸을 풀어주면 됩니다. 여기에 특별한 운동은 없습니다. 다만 온 몸이 풀리면 됩니다. 몸을 푸는 목적은 기혈이 원활히 작동이 되어야만 좀 더 깊은 명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풀기가 끝나면 명상자세로 들어갑니다. 허리를 펴고 턱을 밑으로 당기고 손은 자연스럽게 쥔 후 무릎위에 올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허리를 펴는 것에만 힘을 주되 온 몸에 힘을 뺍니다. 눈을 감으면 의식이 여기저기 비추기 시작할 것입니다. 의식(心眼이라고도 함)을 하단전(처음에는 하단전이지만 중단전에 두어도 되고 나중엔 의식을 텅 비어야 함)에 두기 바랍니다. 하단전이란 배꼽 아래쪽으로 손가락이 세마디정도 들어갈 위치에 있습니다. 숨을 크게 세 번 들여 마셨다가 내 뱉으십시오. 그런 후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을 쉬십시오. 숨이 목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하단전이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고 생각하십시오. 의식 또한 하단전에 고정시키고 숨쉬는 것과 하나가 되도록 하세요. ... 들숨과 날숨이 점점 깊어지면 몸이 따뜻해지거나 간지러워지거나 침이 고이거나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신체의 상하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뤄가는 증거이니 그러려니 하고 신경쓰지 말기 바랍니다. 이러한 현상은 몸의 아래쪽에 있는 수기(水氣)가 몸의 위쪽에 있는 화기(火氣)와 서로 통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명상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30~40분을 하면 되는데(개인과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도 됨), 이것이 들숨과 날숨의 1회에 하는 방법이니 매회 계속 하면 됩니다. 가능하면 천천히 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건 절대로 억지로 해서는 안되며 자연스럽게 해야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빨리 이루겠다는 생각이나 빠른 방법을 통해 지름길로 가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매일 빠짐없이 명상을 한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랜기간 명상을 하게 되면 의식(생각)에 따라 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수준에 따라 방법을 약간씩 바꿔야하는데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의식적인 행위로부터 무의식적인 행위로 옮아가야합니다. 처음엔 의식을 어느 한곳에 두지 않으면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지기 때문에 한 곳에 의식을 둘 뿐 명상이 깊어지면 무아의 상태로 의식을 어느 한 곳에 둔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들어가야 합니다.
명상을 마치면 가볍게 몸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자신에게 주어진대로 하면 되고, 꼭 이만큼 해야 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밥을 할 때 불을 너무 세게 때면 3층 밥이 되고, 너무 약하게 때면 밥이 잘 되지 않듯이 일정한 시간에 알맞은 세기로 불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수행은 항상 꾸준히 규칙적인 시간을 투여해야 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빠르게 이루려는 생각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 머물러야 합니다.
8. 소주천과 대주천
1) 기경팔맥, 소주천과 대주천
선도수련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선도 수련은 위의 호흡법을 통하여 기를 단전에 모으고 다시 이를 운용하여 전신으로 돌리는 방법입니다. 선도수련을 매일 계속하면 하단전에 기(氣)가 모여 정(精)이되며 회음혈을 통하여 독맥의 첫 혈인 장강혈을 지나 정수리 백회혈로 가서 이마와 코등를 내려와 윗 입술에서 입천정 까지 독맥이 와서 임맥을 만나고 임맥의 승장혈을 지나 마음의 자리 전중을 거처 하단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몸에 양기를 한바퀴를 돌리면 이것이 소주천입니다. 계속 수련하여 12경에 기를 돌리고 기경 팔맥에 기를 자유로이 돌리게 되면 전신주천입니다. 즉, 대주천을 이룬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신선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 기경팔맥(奇經八脈): 한의학에서 정경(正經)에 대비되는 경맥(經脈)을 이르는 말. 십이경맥(十二經脈)은 경락(經絡)의 주체이므로 십이정경(十二正經)이라고 함. 기(奇)는 단독을 뜻하며, 팔맥(八脈) 상호간에는 일정한 음양표리(陰陽表裏)의 배우(配偶) 관계가 없으므로 기경이라 한다. 기경팔맥은 십이경맥 사이에서 종합적인 조절작용을 한다. 기경팔맥과 십이경맥과의 관계를 비유하기를 십이경맥은 강하(江河)와 같고, 기경팔맥은 호택(湖澤)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기경팔맥에는 독맥(督脈) ·임맥(任脈) ·충맥(衝脈) ·대맥(帶脈) ·양교맥(陽빵脈) ·음교맥(陰빵脈) ·양유맥(陽維脈) ·음유맥(陰維脈) 등의 8종이 있다.
2) 기공수련의 단계(段階)
ㄱ) 기침단전(氣沉丹田)
몸 밖의 대자연의 기를 흡입해 몸속의 원기와 서로 이어 접해 임맥(任脈)의 화개․ 전중․ 중완을 거쳐 단전으로 가라앉히는 것을 말합니다.
ㄴ) 소주천(小周天)
기가 임맥(任脈)과 독맥(督脈), 두 맥을 관통하는 것으로서 단전으로부터 뒤로 회음․ 미려․ 명문․ 신주․ 옥침을 거치며 올라가 백회에 이르러 앞으로 미심․ 화개․ 전중․ 중완을 거치며 내려와 단전으로 돌아오는 끊임없는 순환을 말합니다.
ㄷ) 대주천(大周天)
기가 임맥(任脈)․ 독맥(督脈)․ 충맥(衝脈)․ 대맥(帶脈)․ 음유맥(陰維脈)․ 양유맥(陽維脈)․ 음교맥(陰嶠脈)․ 양교맥(陽嶠脈) 등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관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대주천을 이루면 기가 온몸의 관절과 맥락(脈絡)을 관통해 모든 세포조직에 막힘없이 잘 통하고 말초신경에까지 두루 흘러 퍼짐으로써 오장육부를 튼튼히 하고 내경(內勁)을 증진시킴은 물론, 보호 작용을 하는 피부, 운동 작용을 하는 근육, 지지작용을 하는 골격 또한 튼튼히 합니다. 또한 이 대주천이 태극권에서 말하는 기편신구(氣遍身軀)로서 발경에 있어서는 협척으로부터 양팔을 통과해 손가락에까지 도달하는 것이고 뿌리를 내림에 있어서는 단전으로부터 밑으로 양다리를 통과해 용천혈에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기가 운행되는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전에서 충맥을 지나 양다리 안쪽의 음유맥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 용천에 이르고 곤륜(崑崙:외측 복숭아 뼈 뒤쪽에 있음)을 거쳐 다시 양다리 겉쪽의 양유맥을 따라 위로 올라가 어깨를 지나서 양팔 겉쪽을 따라 손으로 내려가 노궁혈(勞宮穴)에 이르러 다시 양팔의 안쪽으로 올라와 견정(肩井)에 다다라 목에서 양측 귀 뒤를 지나 위로 백회(百會)에 이르러 다시 임맥이나 독맥을 따라 내려가 단전에 다다릅니다.
3) 기공수련의 느낌
기란 전기와도 같아서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쥐려 해도 쥘 수 없으며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지만 몸속의 기가 왕성해 지면 열감, 청량감, 팽창감, 저린감 등의 이른바 기감(氣感)이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또한 기공의 수련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손가락의 지문 부위에만 땀이 솟는 특이한 현상도 있으며 황홀한 기분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9. 지관(止觀)은 어떻게 할까?(「한마음 요전」독서 권유)
이제부터는 대표적인 수행법 중 지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止)는 머무르다 그치다란 뜻이며, 관(觀)이란 지켜보는 것입니다. 지관(止觀)이란 조용히 그쳐 마음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 모습 등을 보고(의식하고) 이것들을 마음 속에서 녹여 없애서 마음을 비우는 방법입니다.
일반인들의 경우 자기가 생각을 하면서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며,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담겨져 있는 생각들이 아무런 제어 없이 그대로 토해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런 제어가 없이 생각나는 대로 행동한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로보트 인생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수행자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보고, 그것을 녹여 없애서 마음을 바탕으로 돌려놓는 작업(업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여 궁극에는 자신의 마음이 개인적인 마음을 탈피하여 한마음(一心, 본래자리, 공, 하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가슴의 한 가운데)속의 마음을 지켜보는 상태(반폐 반개-눈은 가느다랗게 뜨는게 원칙)에 대하여 의식을 두는 방법으로는
- 정법 안장(正法 眼藏- 바른 법은 눈빛을 내부로 감추는 것): 불교의 가르침. 심안으로 봄.
- 회광 반조(回光 返照- 빛을 바깥에서 안으로 되돌려 비추는 것): 선도의 가르침 등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모두 의식을 내면으로 돌린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없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관에 대하여 주역(풍지관괘: 20번)에서는 황새가 창공에 높이 올라 아래의 먹이를 살피는 상으로서, 군자가 마음을 비우고 지극한 경지로 들어가 관찰 궁구하는 괘로 표현했으며, 기독교에서는
“무거운 짐(생각, 느낌)진 자들아 나를 믿고 놓으라(방하착-집착을 버린다). 깨어라(지켜보라).”
등으로 표현하였고, 백성욱 선생은 '닦은마음 밝은 마음'에서
“마음은 우물과 같아 마음 밑바닥에는 닦아야할 업장이 여기저기 가라앉아 있다가 외부의 충격에(장대로 휘저으면) 찌꺼기가 올라오는데 이 찌꺼기를 표주박으로 떠내는 일(부처님께 바침)을 합니다. 그 여운마저 바칩니다.” 하였고, 대행스님은
“생각의 불쏘시개를 용광로(주인공, 한마음)에 넣어 녹여라. 녹이면 개인적인 나가 죽고 '참 나'가 된다.”
고 하였으며 그 외에도 믿고 맡겨라. 버려라, 놓아라, 넣어라, 거둬라 등의 표현이 있으나 모두 관하는 방법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관(觀)
언제나
온 몸의 긴장을 풀고
주인공을 믿고 모든 것을 놓으라.
가슴 한 가운데를 의식하라.
의식이 가슴에 집중되면
모든 의심덩어리(생각, 느낌...)가 녹아 내리고
사랑과 에너지가 주인공으로부터
흘러 넘칠 것이다.
처음엔 내가 주인공보다 크지만
차차 나와 주인공이 같아지고
나중엔 나는 사라지고 주인공만 남게 된다.
그때, 나는 사랑이 되고
빛이 되고
온 우주가 된다.
10. 지관(止觀)의 실제및 실습(마음 바라보기)
1) 관이란 떠오르는 생각을 지켜보는 것
ㄱ) 온몸의 긴장을 풀고 (손은 무릎이나 허벅지에 가볍게 쥐고 얹습니 다) 눈을 감습니다. - 긴장을 풀고 눈을 감는다.
ㄴ)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해 봅시다.
-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든 눈감은 채로 기록합니다.
ㄷ) 느낌을 기록해 봅시다.
- 행복함, 상쾌함, 즐거움, 답답함, 화남, 분노함 등을 기록합니다.
ㄹ) 몸의 상태를 잘 살펴 기록해 봅시다.
- 아픈곳, 간지러운 곳, 부어오른 곳, 배고픔, 심장이 뛰는 것 등
을 기록합니다.
ㅁ) 생각이나 느낌이나 몸 상태를 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이 느껴집 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다시한번 반복) 또는 지켜보는 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나 느낌이나 몸 상태를 지켜보는 것을 관(觀)이라고 합니다. 이때 지켜보는 자를 의식이라고 합니다.
ㅂ) 생각이나 느낌 중에는 의도적으로 생각하여 나타나는 경우도 있 고, 자신의 의도와 전혀 관계 없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도된 생각을 해 봅시다. ... 이건 자신의 의지(뜻)와 관계가 있 습니다. 이것을 현재의식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의도되지 않는 생각이나 느낌을 찾아 봅시다. ... 이것은 지금 현재의 자신의 의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의도되지 않은 생각들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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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생이지지는도둑놈님의 댓글
생이지지는도둑놈 아이피 121.♡.78.89 작성일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지난 주 가야로님과 5~6시간 정도 도담을 나누었습니다.
가야로님은 진즉 자신이 알고 계신 모든 것을 사유화 하지 않고 전면공개하기로 계획을 잡고 계셨습니다.
본문 처럼 개인적으로 연구중인 자료들은 지금부터 바로 순차적으로 진행하실 수 있지만 현무경과 관련된 것은 도의상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수년 이후에 모든 것을 개방하는 길을 모색 중이십니다.
사회인으로써 구도자로써 치열한 삶을 살아가시는 구도자인 가야로님께 개인적으로 존경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모든 도생님들께서도 거부감이나 오해 보다는 가야로님을 증법도의 참도생이다 생각하시고 함께 허심탄회하게 묻고 답하며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야로님의 댓글
가야로 아이피 220.♡.58.168 작성일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사이트 운영진에서 글을 자유롭게 올려도 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제가 공부하는 내용이 개인적인 공부로 끝나지 않고 함께 고민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꼬록님의 댓글
꼬록 아이피 125.♡.44.133 작성일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잠깐 읽어보았는데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틈틈이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adagio님의 댓글
adagio 아이피 210.♡.140.141 작성일이거 쉬는날 날잡아서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