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징 에피소드,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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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이지지는도둑놈 (183.♡.87.86) 작성일16-01-25 21:25 조회6,712회 댓글5건본문
안녕하세요.여보돌아와줘흑흑입니다.대화명을 변경했습니다.며칠 남짓한 새해에는 우리 도생님들 모두 활연대각 하시길 두손 모아 심고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위징은 당태종 이세민을 보좌 한 장상입니다.경전에 등장하는, 상제님께서 위징을 불러들여 꾸짖으시는 천상의 에피소드. 그리고,죄질이 중한자는 1000년에 한번씩도 재판을 연다는 상제님의 말씀은 신앙인으로써의 저에게 숱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화두였습니다.하지만,아둔한 머리로는 결론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화명을 변경한 기념으로 위징의 잘못에 대해 파헤쳐 구도자로써의 정체성을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이글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 입니다.하교 길, 버스 간에서 도란거리는 여고생들 처럼 도생님들께 전하는 수다 정도로 가볍게 보아 주셔서 저의 아둔함으로 공연한 분심의 누가 되지 않길 도생님들께 간청드립니다.
저는 사실, 위징에게서 잘못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하지만,상제님께서는 위징을 불러들여라 하시고, ‘너는 어찌하여 낮에는 당태종을 돕고, 밤에는 옥황상제를 모시는 두마음을 품었느냐’하시며 꾸짖으시자,위징은 백배사죄 합니다.
위징에 대한 지식이 짧아, 그의 전기를 검색을 해 보았지만 역시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그의 잘못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100년전 천지공사에서 상제님께서는 오늘의 자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는 걸까?. 이 의문은 지난 신앙기간 동안 꾸준히 머리속을 맴돌 뿐, 궁금증은 해소 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위징은 살아생전 6명의 주군을 갈아 치웠다 합니다. 내로라하는 간신들도 울고 갈 정도로 그의 주군 갈아 치우기는 유래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하지만,여타 장상이나 간신들과는 달리 매번 전력을 다해 주군을 보필 한 양신중의 양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모시던 주군이 패망 혹은 파산하여 어쩔 수 없이 주군을 바꿀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의 연속 이었습니다.그는 군주를 통해 백성의 안위를 도모하려는 일관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는 현란하게 포장해서 말하던 당시 왕실의 유행을 깨고 직설법으로 군주에게 간언하는 충신이며 당태종도 그런 그를 높이사, 그가 64세의 나이로 작고하기 까지 지극히 보살폈다 합니다.그리고,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 했다고 전합니다.
서유기에는 당태종과 바둑을 두다 잠깐 조는 사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경하용왕을 처단하고 오기도 하고, 그에 분개한 용왕이 당태종을 괴롭히는 우화가 전하기도 합니다.이를 볼때,생전 옥황상제를 모셨던가 봅니다. 그리고,그가 우여곡절 끝에 정치에 첫 입문 전 까지, 속세를 초월한 도사로써의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보아 위 사실이 더욱 힘을 얻습니다.도교 신봉자로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판단 기준으로는 위징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자,우리의 상황에 대입을 해보니 두가지로 압축이 되었습니다.개벽 그리고,상제님과 우리의 사이에 위치한 교주들 입니다.
그리고,모든것의 근본이자 시작인 천상의 입지에서 걸러 내니 성언을 짐작 할 수 있었지만, 물론,저 만의 생각입니다.교주신앙이 아니라 상제님을 신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메시야 신앙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아가 개벽이 올까 안 올까의 두마음이 아닌,천지의 춘생추살의 덕도 일심에서 비롯 되는데, 두마음을 품고 신앙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며 교훈을 주는 것이라 결론 내렸습니다.
옥황상제 만 모셨던지, 당태종만 보위 했던지, 둘 중 한가지로만 올인 했다면 상제님께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라 유추 해 보지만 역시 주관입니다.우리나 범인의 판단으로 보면 위징의 입장에서 억울한 상황이라 할 만 하나,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천상의 지공무사 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에피소드 입니다.크게 두가지로 나눠 보았습니다.
1.개벽신앙과 평생신앙
일반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종교에는 새로운 질서의 도래와 그에 따른 구원관이 혼용되어 녹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신구 기독교에서는 지상의 질서는 배제하고 천상에 존재하는 천국을 명시합니다.물론,중세 이후 많은 분파들에서는 지상천국 등을 언급 하며 지구가 천국으로 변한다는 교리를 고수합니다.역시,여타 종교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유형적이거나 무형적인 새 세상에 대한 구원관을 혼용하고 있습니다.유교는 법치주의에 기반한 왕도정치의 완성으로 지상을 유토피아로 변화시킨 다는 다소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제한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내용들을 궂이 열거 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세밀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오니 어지러워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기성종교의 내세관이나 상제님 진리의 내세관이나 큰 틀에서 보면 인간의 근본적인 꿈의 문제라는 것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개벽 홍역을 평생을 바쳐 치룬 우리들에게 위징을 통해 상제님께서 참 신앙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해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개벽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후천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기 위해선 개벽은 필수라는 것을 여러 차례 언급하셨고, 우리 역시 현재 우리 인류의 구석구석에서 개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너무 짧은 생로병사의 순환입니다. 인류가 맞딱드린 대부분의 문제는 이 한시적인 싸이클을 벗어나지 못 한 생로병사의 질서가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 듭니다.
개벽을 통한 무위자연의 새로운 재정립, 이것이 기성종교의 구원관과 차별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철학적 구원관을 갖춘,그래서 상제님을 더욱 따르게 되는 상식적인 매력이라 생각합니다.하지만,시기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큰 착각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는것이 결코 손해보는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이제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과학적인 신앙을 할 때 라는 생각입니다.그렇다고 제가 개벽문제를 극복하고 고상하다는 것이 아닙니다.이런 말은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개벽이 온다.
우리가 죽기 전에 개벽이 안 온다.
위의 두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니,‘우리가 죽기전에 개벽이 안온다’는 것이 당연히 남는 장사였습니다.철저히 이성적인 위치에서 상제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심안을 안겨 줍니다.개벽이 안 와도 가감 없는 진리의 진면을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매번 선택을 해야 합니다.개벽에 대해 무엇이 더 남는 장사인지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무위자연에 결코 굴하지 않는 날선 철학자의 정신을 가질때 하늘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상제님께서도 바른 마음을 갖고 바른말을 하면 하늘도 떤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젊은 농부가 할머니 농부에게 해도 해도 끝없는 농사일이 진저리가 나 넋두리를 하며,‘으이그 허리야.이놈의 농사는 언제 끝나나’ 하니 할머니 왈,‘농사가 끝이 있간디 죽어야 끝나지’하더랍니다.참 도통한 소리 아닙니까?
2.교조신앙과 교주신앙
교조이신 상제님과 인류의 사이에 누군가 끼어 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지난 100여년 도운은 대다수의 경우에서 꼭 중간에 누가 끼어서 혼란을 주었고 상제님을 왜곡 시켰습니다.상제님과 창생의 사이에 끼어들어 창생으로 하여금 두마음을 품게 만들었습니다.위징의 교훈에서 구도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엿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오히려,기성종교의 헌신적인 성직자들의 마인드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교운판의 교주들은 상제님을 왜곡 시키는 일등공신 이었습니다.우리 구도자들은 창생에게 두마음을 품게 유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제님과 창생의 중간.
거기서 투명인간이 되어 징검다리의 역할만 하는 것이 상제님의 자식인 우리들의 참 사명이 아닌가 합니다.그런 연후, 주체 할 수 없는 남은 복은 우리 차지라 생각 해봅니다.
날씨가 많이 차갑습니다.건강관리 잘하시고 두서없는 글을 이만 마치겠습니다.
댓글목록
안경낀늑대님의 댓글
안경낀늑대 아이피 58.♡.11.178 작성일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멋지십니다...
똥극이가 그랬었다죠!
예전 수오사(4인방 중 하나)들이 보고 들어가 보고 올리던 중... 내가 아버지 꿈을 꾸었는데...
글쎄 "울 아버지(구름산)가 천상에 올라 가 "상제님인지? 천상 원군님인지?"에게 절을 올리며 보고를 올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더라는 것!
그러니 잘들 알아서 해라 했다는 것!ㅋㅋㅋ
과연 구름산이 그럴 위인이 되었겠습니까? 사기질이지!
글을 읽으며 잠시 그 시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속고 속은 것이 우리들! 아니었겠어요...
이제는 그곳에서 나왔고 그들이 걸어간 그 길 되풀이 되지 아니되어야 겠지요...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아님 근거가 없는 이야기인지 가려서...
더욱더 상제님 말씀에 다가서는 참신앙이 되었으면 합니다...
안경낀늑대님의 댓글
안경낀늑대 아이피 58.♡.11.178 작성일
사려 깊음! 참으로 훌륭하다 생각됩니다...
사려 깊음 이들 말없이 혼자 묵묵이 제 갈길 다 간다 봐야 겠지요...
겸손하게 그것이 자신이 할 몫이었다고 하면서요...
아무런 보답 원치 않으며 항상 부모님에 감사하며 살지요.. 불의는 참지 못하면서요....
그와 같은 이들이 지나는 길에는 폐지 줍는 길거리 노인네들 주머니에 막걸리 값이 삲인다는 것!
사려 깊은 분들 모습 잊혀지기를 원치 않으며...
태미동자님의 댓글
태미동자 아이피 223.♡.67.117 작성일
여보야님이 생이지지님으로
글을 잘올리지 않고 댓글만~~~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
아리랑님의 댓글
아리랑 아이피 211.♡.60.18 작성일
<우리가 죽기전에 개벽이 안온다’는 것이 당연히 남는 장사였습니다.
철저히 이성적인 위치에서 상제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심안을 안겨 줍니다>
생이지지님! 참 의미깊은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개벽이 온다, 안온다는 개인적인 판단을 떠나서
개벽이 오든, 안오든 주어진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하고 개벽이 온다해도 감당할
깜냥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벽이 곧온다’ 는 단 한가지 명제 앞에서 우리는 참 많이도 부서지고 엄청난 것들을
잃었습니다. 개벽 이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명제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 것이 참 좋습니다.
박스칼렛님의 댓글
박스칼렛 아이피 67.♡.90.234 작성일
저도 알지 못하는 놈이 아는 척하며 신도들에게는 곧 개벽온다 사기치고,
그 개벽장사해서 이익을 본 놈들은 과연 누구였습니까?
수많은 신도들을 도탄에 빠뜨리며 착취한 재물을 자식들에게 상속시켜준 놈은 과연 누구입니까?
상제님께서는 개벽타령만 하는 신원일 종도와 김광찬 종도의 무분별한 행동을 경계하셨습니다.
서투른 글자나 안다고 손가락을 곱작거리며 아는 체 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거라고도 하셨습니다.
만약 어느날 갑자기
모교단에서 그렇게 바라는 개벽이 온다면
가장 먼저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뒤틀릴 놈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주둥아리만 나불거리지 말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다 살리지 못하는 천하창생이 안타까와서 그렇게나 흐느껴 우시던 상제님의 마음이라도 닮아보라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