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사에서 증산교와 도교의 만남(푸른글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중에서) 2_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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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4.♡.206.36) 작성일13-12-09 17:17 조회7,302회 댓글0건본문
한국종교사에서 증산교와 도교의 만남(푸른글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중에서) 2
노들작성일13-07-18 16:58조회204회 댓글5건
<:ARTICLE id=bo_v_atc>
< 증산교의 교리체계에 보이는 도교적 신격 >
대순전경에는 道敎的(도교적) 神格(신격)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처럼 도교신앙이 반영된 신격을 증산선생께서 자주 언급하시고 있다는 사실이 증산교 교리체계에 흡수된 도교사상의 증거의 하나가 된다.
그 대표적인 신격은 다음과 같다.
< 太乙天上元君 >
태을천상원군은 증산교의 대표적인 주문인 태을주에 나타나는 신격이다.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는 잠 적게 자고 太乙呪(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五萬年(오만년) 동안 洞里(동리) 洞里(동리) 각 學校 (학교)에서 외우리라. (7장 18절)
太乙天上元君(태을천상원군)이라는 신(神)은 수많은 도교의 神格(신격) 가운데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교의 대표적인 신들의 위계를 적어놓은 기록인 「洞玄靈寶眞靈位業圖(동현령보진령위업도)」에도 太一玉君(上第一右位),
太一元君(第四右十五使者自然之神:제4우15사자자연지신)이 있을 뿐이다.
정확히 똑같은 이름의 신격은 보이지 않지만,
天上(천상)이라는 글자가 단순히 “하늘에 있다.”는 의미라면 太一元君(태일원군)이 太乙(天上)元君(태을(천상)원군)과 가장 비슷한 신격이다.
그리고 太乙元君(태을원군)이라는 神名은 道藏(도장)에서도 확인된다.
반면 太乙天(태을천)이라는 용례는 한자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이므로, 太乙天(태을천)의 上元君(상원군)이라는 신격으로 보는 일은 맞지 않다.
일단 태을천상원군은 太乙(태을)이라는 별과 관계있는 신격으로 보이는데, 太乙 (태을)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자.
太乙(태을)은 太一(태일)과 같은 말로 쓰이며, 다양한 형태로 이해되어왔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고유한 별자리는 3垣(3원) 28宿(28수)으로 불린다.
모든 별들은 北極星(북극성)을 天樞(천추)로 삼고 그 주위에 28宿의 星座(성좌)가 나뉘어져 있으므로, 북극성은 天(천)의 핵심이요, 중앙이다.
이처럼 모든 천체의 구심점을 이루는 별인 北極星(북극성)을 도교에서는 太一神(태일신)으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를 玉皇上帝(옥황상제)라는 人格神(인격신)으로 표현하였다.
옥황상제는 절대유일의 天帝神(천제신)이기에 천상계 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를 총괄하는 절대자이다.
옥황상제를 정점으로 천상계의 星神(성신)은 각기 맡은대로 상제의 지시를 받아 인간사를 조관하는 中間子(중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李圭景(이규경)의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에 “예로부터 하늘을 다스리는 神(신)을 天帝(천제)라고 하는데,
천제라는 칭호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렸다.
商.周(상.주)의 시대에는 上帝(상제)라고 하였고,
漢初(한초)에는 太乙(태을)이라 하였으며,
元始年間(원시년간)에는 皇天上帝(황천상제)라고 하였다.
魏初(위초)에는 皇皇大帝(황황대제),
梁(양)에서는 天皇上帝(천황상제)라고 불렀으며,
西晋(서진). 后齊(후제). 后周(후주). 隋(수). 唐(당)의 시대에서는 昊天上帝(호천상제)라 불렀다.
또 세속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라고도 불렀는데, 그 황탄하고 허망함이 극에 이르렀도다. 春秋(춘추)에는 하늘의 모든 陽精(양정)을 합하여 太乙(곧 太一)이라고 하므로, 이를 나누어서 각기 다르게 이름한 것이 아닌가 한다.”라는 귀절이 있다.
그리고 北極星(북극성)의 第二星(제2성)을 태양을 주관하는 帝王星(제왕성)으로서 太一(태일)의 座(좌)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위의 기록과 연관시켜 보면, 北極星座(북극성좌)를 太一之座(태일지좌)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결국 太乙(太一)神의 상징은 북극성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북극성은 天體(천체)를 통괄하는 神(신)의 상징으로 보인다.
한편 天文圖(천문도)를 살펴보면,
이러한 북극성을 의미하는 太乙(태을) 이 외에도, 紫微垣(자미원)에 太一(태일)이라는 별이 따로 있다.
이 紫微垣(자미원)의 太一(태일)은 天一(천일)의 남쪽에 위치한 별로서, 天帝(천제)의 臣의 하나이며 兵亂(병란). 災殃(재앙). 生死(생사) 등을 맡고 있다고 전한다.
唐代(당대)의 유명한 시인인 杜甫(두보)의 글 가운데 太乙天尊(태을천존)이라는 신격에 관한 것이 있다고 전한다.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太乙(태을)은
첫째, 天帝(천제)의 名號(명호)로서 天(천)을 주재하는 神(신)으로서 北極星(북극성)을 가리킨다.
둘째, 陰陽家(음양가)에서 星占(성점)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紫微垣(자미원) 안의 太一(太乙)이다.
셋째, 萬有(만유)를 포함하는 大道(대도)이자 천지창조의 混沌(혼돈)한 元氣(원기)로서 太極(태극)과 비슷한 의미이다.
한편 도교에서 醮齋(초재)로 행하였던 太一醮(태일초)는 주로 天帝(천제)의 臣下(신하)인 태일(태을)성(星)을 제사지낸 것으로 보인다.
太一(태일)에 제사드린 예는 많이 발견되는데,
道藏(도장)에도 太一(태일)에 제사지낸 문건들이 수록되어 있다.
宋(송) 太宗 8년 (太平興國 8년, 983년)에 수도에 太一宮(태일궁)을 세우고 그 경위를 적은 글이 있고,
宋(송) 仁宗 6년 (天聖 6년, 1026년)에 京城(경성)의 서남쪽에 태을궁을 세웠음을 알린 글이 있으며,
宋(송) 神宗 4년 (熙寧 4년, 1071년)에도 서울의 남쪽에 三門七殿(삼문칠전)의 궁을 세워 태을신에 제사지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出兵(출병)하거나 災厄(재액)이 일어날 때에 이 神(신)에 제사드렸다는 기록들이 보이며,
고려 및 조선조에서도 太一(태일)은 주로 軍事祭(군사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太乙星(태을성)은 天上(천상)의 중요한 星辰(성진)으로서 人間事(인간사)의 禍福(화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앙되었다.
한편 太乙(태을)은 易緯乾鑿度(역위건착도)에 “太乙(태을)이 그 수를 취하여 九宮(구궁)을 운행한다.”고 했고,
그 주에 “태을은 北辰(북진)의 귀신이다.”고 했다.
그리고 太乙(태을)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은 주로 점술에 관한 책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국 고소설에서 太乙(태을)은 天帝(천제)를 보좌하며 인간을 도와주는 仙官(선관)으로 나타나거나,
太乙(태을)의 星精(성정)을 타고 출생하는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玉樓夢(옥루몽)에서는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며,
옥황상제가 太乙眞君(태을진군)의 요청에 의해 文昌星(문창성)을 下降(하강)시킨다.
심청전에는 龍宮世界(용궁세계)에 모인 천상의 仙官仙女(선관선녀) 가운데 태을진군이 있다.
天帝(천제)는 우리의 古小說(고소설)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도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상고시대부터 天子(천자)가 제사지냈다는 太一神(태일신) 즉 天帝(천제)는 동양 고래의 敬天(경천)신앙에서 출발하여 도교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로 표현되었고,
소설 속에서는 天上仙界(천상선계)의 주재자로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세계를 주재 하는 最尊貴(최존귀)의 신이었다.
이 밖에도 太乙星(태을성)이 한국 고소설에 나타난 예도 있다.
(淑香傳(숙향전)에서는 李仙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에 태을성이 나오고, 五仙奇逢(오선기봉)에는 처사의 꿈에 태을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주인공이 전생에 太乙星이었다는 작품으로는 柳花奇夢(유화기몽), 雙珠奇緣(쌍주기연) 등이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본다면
대순전경에서 하늘에서 으뜸가는 임금으로 지칭되는 太乙天上元君(태을천상원군)은 북극성을 인격화한 신격으로 짐작되며, 도교적 영향을 반영하는 신격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증산교단의 대표적인 주문인 태을주에 나타나는 신격이 도교의 영향을 받은 신격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 墀王(조왕) >
증산선생은 조왕이라는 신격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 병욱이 그 아내를 시켜 점심을 지을 때 날이 심히 더우므로 병욱의 아내가 괴로워하여 홀로 불평하는 말을 하였더니, 문득 鍧斜症(굉사증,와사증)이 일어나거늘 --- 이는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 墀王(조왕)에게 벌을 받음이니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부엌에 사르며 사죄하라 하시니, 병욱의 아내가 그대로 하야 곧 나으니라.(2장 95절)
조왕은 부엌의 신으로서, 매년 음력 12월 23일에 그 집의 집안 일을 上帝에게 고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어지는 신격이다. 이렇게 하늘로 올라간 조왕은 섣달 그믐날에 다시 내려온다고 하여, 그 날에는 밤새워 자지않고 조왕에게 제사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조왕은 부엌에서 사용하는 불의 정화력과 관련이 있는 火神(화신)이며, 아궁이를 맡고 있는 재산신으로서도 민간에서 받들어졌다.
증산선생은 부엌에서 갑자기 입이 비뚤어지는 증세를 일으킨 제자의 부인에게 墀王(조왕)에게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해주신다.
한편 증산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하셨다.
--- 日月(일월)은 墀王(조왕)이 主張(주장) --- (3장 134절)
인용문에서 보이듯이 조왕이 해와 달을 주장한다는 글이 보인다.
이는 기존의 조왕신앙에서는 살펴볼 수 없었던 내용인데, 필자는 이에 대한 전거는 찾을 수 없었다.
< 關帝(관제) >
關帝信仰(관제신앙)은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전래한 민중도교신앙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래로부터 문학작품을 통해 관제가 숭배되었으나, 신앙적으로는 임진왜란 때에 파견된 明(명)나라 군사들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명나라군이 왜군을 격퇴시킨 것은 관제의 陰佑(음우)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졌으며, 그 후 전국 각 처에 關聖廟(관성묘)를 짓고 관제(關帝)는 국가의 수호신이자 민간의 財神(재신)으로 모셔졌다.
역사적 인물인 關羽(관우)는 삼국시대 蜀(촉)땅 사람으로 字(자)가 雲長(운장)이다. 그가 1614년에 받은 三界伏魔大帝神威遠鎭天尊關聖帝君(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이라는 칭호가 증산교의 중요한 주문 가운데 하나인 五呪(오주)의 마지막에 들어간 사실에서, 관제신앙의 증산교에 대한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다.
증산선생은 관우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셨으며, 선생의 중요한 천지공사에 그의 힘을 빌리기도 하신다.
다음의 인용문은 관우가 천지공사에 협조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계시며, 관우가 천지공사에 협조했다는 사실을 관우의 神像(신상)의 변화로써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泰仁(태인) 關王廟(관왕묘) 祭員(제원) 신경원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새, 경원에게 일러 가라사대 關雲長(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供待(공대)를 받았으니 보답으로 당연히 公事(공사)에 진력협조함이 가하리라 하시고, 洋紙(양지)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경원은 처음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더니, 다음날 경원이 다른 祭員(제원)들과 더불어 關王廟(관왕묘)에 들어가 奉審(봉심)할 새 三角鬚(삼각수)의 한 갈래가 떨어져 없어진지라. 모든 祭員(제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되 오직 경원은 天師(천사)께서 전날 하신 일을 회상하고, 관운장이 公事(공사)에 盡力協助(진력협조)하였음을 표시하기 위하야 塑像(소상)에 그 표적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 (3장 15절)
인용문에 나타난 이적을 경험한 태인 관왕묘의 제원은 증산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관우가 조선에서 대접받았기 때문에 증산선생의 공사에 협조함이 마땅하다는 말씀을 통해 증산선생은 관우신앙을 흡수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증산선생은 관왕묘의 치성에도 관심을 보이시며, 관우의 신명이 서양에 가서 일을 하고 있으므로 그 치성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하루는 全州(전주) 김준찬의 집에 계실 새, 김락범에게 물어 가라사대 關王廟(관왕묘)에 致誠(치성)이 있느냐 ? 대하야 가로대 있나이다. 가라사대 그 神明(신명)이 이 지방에 있지 아니하고 西洋(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나니,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3장 135절)
관우의 신명이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고 있다는 증산선생의 말씀은, 후대의 증산교단에서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관우가 증산선생의 공사에 협력하고 있다는 일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일로 믿어지며, 서양에서 난리를 일으킬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나아가 증산선생께서 몸소 관우의 얼굴로 변하는 이적을 행하기도 하시며,
관우의 묘호를 현무경의「病勢文(병세문)」에 기록하실 정도이다. (4장 129절)
< 六丁六甲 >
六丁(육정)은 도교의 神(신)이름이다.
後漢書(후한서) 권 50 「梁節王暢傳(양절왕창전)」에 “육정을 시켜 꿈을 풀 수 있다.”고 했고, 그 주에 “육정은 六甲(육갑) 가운데 丁(정)의 귀신이다.”고 했다.
증산선생은 六丁六甲(육정육갑)이라는 글귀를 쓰신 적이 있다. (4장 138절, 7장 22절)
한편 六丁(육정)은 陰神(음신)이고, 六甲(육갑)은 陽神(양신)인데, 모두 天帝(천제)의 명을 받들고 風雷(풍뢰)를 일으켜 鬼神(귀신)을 제어한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육정육갑은 수호신 또는 방위신으로서 민간에서 신앙되었고, 호신부적으로 그려서 몸에 간직하여 재난을 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한 친근한 신이었다.
증산께서 육정육갑신(六丁六甲神)들을 호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 천사 가라사대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일을 재촉하느냐 ? 六丁六甲(육정육갑)을 쓸어들일 때에는 살아날 자가 적으리로다 하시니라. (4장 15절)
< 糢嬚(망량) > * 본 글의 저자가 아닌 제가 한자(漢字)를 찾아보니 ====> 망량이 아닌 糢嬚(모렴)으로 나오네요
망량은 도깨비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장난을 치는 신격이다.
망량에 대해 증산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다.
--- 先天(선천)에는 道家(도가)에서 이 고기(개고기)를 忌(기피)하였으므로 糢嬚(망량) 이 응하지 아니하였나니라. (3장 130절)
증산선생은 인간이 먹는 음식(개고기)에 응하는 신으로 망량을 이해시키고 계시며
--- 天地(천지)는 糢嬚(망량)이 主張(주장) --- (3장 134절)
하늘과 땅이 망량신에 의해 이끌어질 것임을 밝혀주셨다. 이같은 내용도 기존의 망량에 대한 믿음에는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 五方神將(오방신장) >
神將(신장)은 장군의 권능을 지닌 신격으로 이해된다.
五方(오방)은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오방신장은 각 방위를 맡은 신격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오방신을 무속에서는 巫神(무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한편 증산선생은 오방신장을 불러서 천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다
--- 天下戶口(천하호구)를 成冊(성책)하야 오라 하시므로 대답하고 오방신장을 불러서 成冊(성책)하여 올림에 --- (4장 91절)
오방신장과 비슷한 용어로 怪疾神將(괴질신장) (2장 117절)과 四十八將(48장)이라는(3장 100절) 용어가 보인다. 이들은 각기 질병을 맡은 신장과 많은 수의 신장을 나타낸다.
그리고 二十八將(28장)과 二十四將(24장)은 (7장 11절)
각기 後漢(후한) 光武帝(광무제) (25년 - 56년) 때의 功臣(공신) 28명의 초상화를 그렸던 일이 후대에 28宿(28수)과 비견하여 신앙되었거나 唐(당) 太宗(태종)때의 공신 24명의 초상을 그렸던 일이 후대에 24節候(24절후)에 빗대어 신앙되었다.
증산교단에서는 이들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쭉 이어서 부르는 주문도 외우고 있다.
...................... 나머지는 다음시간에 또 올리겠습니다.
대순전경에는 道敎的(도교적) 神格(신격)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처럼 도교신앙이 반영된 신격을 증산선생께서 자주 언급하시고 있다는 사실이 증산교 교리체계에 흡수된 도교사상의 증거의 하나가 된다.
그 대표적인 신격은 다음과 같다.
< 太乙天上元君 >
태을천상원군은 증산교의 대표적인 주문인 태을주에 나타나는 신격이다.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는 잠 적게 자고 太乙呪(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五萬年(오만년) 동안 洞里(동리) 洞里(동리) 각 學校 (학교)에서 외우리라. (7장 18절)
太乙天上元君(태을천상원군)이라는 신(神)은 수많은 도교의 神格(신격) 가운데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교의 대표적인 신들의 위계를 적어놓은 기록인 「洞玄靈寶眞靈位業圖(동현령보진령위업도)」에도 太一玉君(上第一右位),
太一元君(第四右十五使者自然之神:제4우15사자자연지신)이 있을 뿐이다.
정확히 똑같은 이름의 신격은 보이지 않지만,
天上(천상)이라는 글자가 단순히 “하늘에 있다.”는 의미라면 太一元君(태일원군)이 太乙(天上)元君(태을(천상)원군)과 가장 비슷한 신격이다.
그리고 太乙元君(태을원군)이라는 神名은 道藏(도장)에서도 확인된다.
반면 太乙天(태을천)이라는 용례는 한자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이므로, 太乙天(태을천)의 上元君(상원군)이라는 신격으로 보는 일은 맞지 않다.
일단 태을천상원군은 太乙(태을)이라는 별과 관계있는 신격으로 보이는데, 太乙 (태을)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자.
太乙(태을)은 太一(태일)과 같은 말로 쓰이며, 다양한 형태로 이해되어왔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고유한 별자리는 3垣(3원) 28宿(28수)으로 불린다.
모든 별들은 北極星(북극성)을 天樞(천추)로 삼고 그 주위에 28宿의 星座(성좌)가 나뉘어져 있으므로, 북극성은 天(천)의 핵심이요, 중앙이다.
이처럼 모든 천체의 구심점을 이루는 별인 北極星(북극성)을 도교에서는 太一神(태일신)으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를 玉皇上帝(옥황상제)라는 人格神(인격신)으로 표현하였다.
옥황상제는 절대유일의 天帝神(천제신)이기에 천상계 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를 총괄하는 절대자이다.
옥황상제를 정점으로 천상계의 星神(성신)은 각기 맡은대로 상제의 지시를 받아 인간사를 조관하는 中間子(중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李圭景(이규경)의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에 “예로부터 하늘을 다스리는 神(신)을 天帝(천제)라고 하는데,
천제라는 칭호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렸다.
商.周(상.주)의 시대에는 上帝(상제)라고 하였고,
漢初(한초)에는 太乙(태을)이라 하였으며,
元始年間(원시년간)에는 皇天上帝(황천상제)라고 하였다.
魏初(위초)에는 皇皇大帝(황황대제),
梁(양)에서는 天皇上帝(천황상제)라고 불렀으며,
西晋(서진). 后齊(후제). 后周(후주). 隋(수). 唐(당)의 시대에서는 昊天上帝(호천상제)라 불렀다.
또 세속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라고도 불렀는데, 그 황탄하고 허망함이 극에 이르렀도다. 春秋(춘추)에는 하늘의 모든 陽精(양정)을 합하여 太乙(곧 太一)이라고 하므로, 이를 나누어서 각기 다르게 이름한 것이 아닌가 한다.”라는 귀절이 있다.
그리고 北極星(북극성)의 第二星(제2성)을 태양을 주관하는 帝王星(제왕성)으로서 太一(태일)의 座(좌)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위의 기록과 연관시켜 보면, 北極星座(북극성좌)를 太一之座(태일지좌)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결국 太乙(太一)神의 상징은 북극성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북극성은 天體(천체)를 통괄하는 神(신)의 상징으로 보인다.
한편 天文圖(천문도)를 살펴보면,
이러한 북극성을 의미하는 太乙(태을) 이 외에도, 紫微垣(자미원)에 太一(태일)이라는 별이 따로 있다.
이 紫微垣(자미원)의 太一(태일)은 天一(천일)의 남쪽에 위치한 별로서, 天帝(천제)의 臣의 하나이며 兵亂(병란). 災殃(재앙). 生死(생사) 등을 맡고 있다고 전한다.
唐代(당대)의 유명한 시인인 杜甫(두보)의 글 가운데 太乙天尊(태을천존)이라는 신격에 관한 것이 있다고 전한다.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太乙(태을)은
첫째, 天帝(천제)의 名號(명호)로서 天(천)을 주재하는 神(신)으로서 北極星(북극성)을 가리킨다.
둘째, 陰陽家(음양가)에서 星占(성점)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紫微垣(자미원) 안의 太一(太乙)이다.
셋째, 萬有(만유)를 포함하는 大道(대도)이자 천지창조의 混沌(혼돈)한 元氣(원기)로서 太極(태극)과 비슷한 의미이다.
한편 도교에서 醮齋(초재)로 행하였던 太一醮(태일초)는 주로 天帝(천제)의 臣下(신하)인 태일(태을)성(星)을 제사지낸 것으로 보인다.
太一(태일)에 제사드린 예는 많이 발견되는데,
道藏(도장)에도 太一(태일)에 제사지낸 문건들이 수록되어 있다.
宋(송) 太宗 8년 (太平興國 8년, 983년)에 수도에 太一宮(태일궁)을 세우고 그 경위를 적은 글이 있고,
宋(송) 仁宗 6년 (天聖 6년, 1026년)에 京城(경성)의 서남쪽에 태을궁을 세웠음을 알린 글이 있으며,
宋(송) 神宗 4년 (熙寧 4년, 1071년)에도 서울의 남쪽에 三門七殿(삼문칠전)의 궁을 세워 태을신에 제사지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出兵(출병)하거나 災厄(재액)이 일어날 때에 이 神(신)에 제사드렸다는 기록들이 보이며,
고려 및 조선조에서도 太一(태일)은 주로 軍事祭(군사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太乙星(태을성)은 天上(천상)의 중요한 星辰(성진)으로서 人間事(인간사)의 禍福(화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앙되었다.
한편 太乙(태을)은 易緯乾鑿度(역위건착도)에 “太乙(태을)이 그 수를 취하여 九宮(구궁)을 운행한다.”고 했고,
그 주에 “태을은 北辰(북진)의 귀신이다.”고 했다.
그리고 太乙(태을)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은 주로 점술에 관한 책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국 고소설에서 太乙(태을)은 天帝(천제)를 보좌하며 인간을 도와주는 仙官(선관)으로 나타나거나,
太乙(태을)의 星精(성정)을 타고 출생하는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玉樓夢(옥루몽)에서는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며,
옥황상제가 太乙眞君(태을진군)의 요청에 의해 文昌星(문창성)을 下降(하강)시킨다.
심청전에는 龍宮世界(용궁세계)에 모인 천상의 仙官仙女(선관선녀) 가운데 태을진군이 있다.
天帝(천제)는 우리의 古小說(고소설)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도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상고시대부터 天子(천자)가 제사지냈다는 太一神(태일신) 즉 天帝(천제)는 동양 고래의 敬天(경천)신앙에서 출발하여 도교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로 표현되었고,
소설 속에서는 天上仙界(천상선계)의 주재자로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세계를 주재 하는 最尊貴(최존귀)의 신이었다.
이 밖에도 太乙星(태을성)이 한국 고소설에 나타난 예도 있다.
(淑香傳(숙향전)에서는 李仙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에 태을성이 나오고, 五仙奇逢(오선기봉)에는 처사의 꿈에 태을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주인공이 전생에 太乙星이었다는 작품으로는 柳花奇夢(유화기몽), 雙珠奇緣(쌍주기연) 등이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본다면
대순전경에서 하늘에서 으뜸가는 임금으로 지칭되는 太乙天上元君(태을천상원군)은 북극성을 인격화한 신격으로 짐작되며, 도교적 영향을 반영하는 신격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증산교단의 대표적인 주문인 태을주에 나타나는 신격이 도교의 영향을 받은 신격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 墀王(조왕) >
증산선생은 조왕이라는 신격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 병욱이 그 아내를 시켜 점심을 지을 때 날이 심히 더우므로 병욱의 아내가 괴로워하여 홀로 불평하는 말을 하였더니, 문득 鍧斜症(굉사증,와사증)이 일어나거늘 --- 이는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 墀王(조왕)에게 벌을 받음이니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부엌에 사르며 사죄하라 하시니, 병욱의 아내가 그대로 하야 곧 나으니라.(2장 95절)
조왕은 부엌의 신으로서, 매년 음력 12월 23일에 그 집의 집안 일을 上帝에게 고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어지는 신격이다. 이렇게 하늘로 올라간 조왕은 섣달 그믐날에 다시 내려온다고 하여, 그 날에는 밤새워 자지않고 조왕에게 제사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조왕은 부엌에서 사용하는 불의 정화력과 관련이 있는 火神(화신)이며, 아궁이를 맡고 있는 재산신으로서도 민간에서 받들어졌다.
증산선생은 부엌에서 갑자기 입이 비뚤어지는 증세를 일으킨 제자의 부인에게 墀王(조왕)에게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해주신다.
한편 증산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하셨다.
--- 日月(일월)은 墀王(조왕)이 主張(주장) --- (3장 134절)
인용문에서 보이듯이 조왕이 해와 달을 주장한다는 글이 보인다.
이는 기존의 조왕신앙에서는 살펴볼 수 없었던 내용인데, 필자는 이에 대한 전거는 찾을 수 없었다.
< 關帝(관제) >
關帝信仰(관제신앙)은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전래한 민중도교신앙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래로부터 문학작품을 통해 관제가 숭배되었으나, 신앙적으로는 임진왜란 때에 파견된 明(명)나라 군사들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명나라군이 왜군을 격퇴시킨 것은 관제의 陰佑(음우)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졌으며, 그 후 전국 각 처에 關聖廟(관성묘)를 짓고 관제(關帝)는 국가의 수호신이자 민간의 財神(재신)으로 모셔졌다.
역사적 인물인 關羽(관우)는 삼국시대 蜀(촉)땅 사람으로 字(자)가 雲長(운장)이다. 그가 1614년에 받은 三界伏魔大帝神威遠鎭天尊關聖帝君(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이라는 칭호가 증산교의 중요한 주문 가운데 하나인 五呪(오주)의 마지막에 들어간 사실에서, 관제신앙의 증산교에 대한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다.
증산선생은 관우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셨으며, 선생의 중요한 천지공사에 그의 힘을 빌리기도 하신다.
다음의 인용문은 관우가 천지공사에 협조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계시며, 관우가 천지공사에 협조했다는 사실을 관우의 神像(신상)의 변화로써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泰仁(태인) 關王廟(관왕묘) 祭員(제원) 신경원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새, 경원에게 일러 가라사대 關雲長(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供待(공대)를 받았으니 보답으로 당연히 公事(공사)에 진력협조함이 가하리라 하시고, 洋紙(양지)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경원은 처음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더니, 다음날 경원이 다른 祭員(제원)들과 더불어 關王廟(관왕묘)에 들어가 奉審(봉심)할 새 三角鬚(삼각수)의 한 갈래가 떨어져 없어진지라. 모든 祭員(제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되 오직 경원은 天師(천사)께서 전날 하신 일을 회상하고, 관운장이 公事(공사)에 盡力協助(진력협조)하였음을 표시하기 위하야 塑像(소상)에 그 표적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 (3장 15절)
인용문에 나타난 이적을 경험한 태인 관왕묘의 제원은 증산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관우가 조선에서 대접받았기 때문에 증산선생의 공사에 협조함이 마땅하다는 말씀을 통해 증산선생은 관우신앙을 흡수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증산선생은 관왕묘의 치성에도 관심을 보이시며, 관우의 신명이 서양에 가서 일을 하고 있으므로 그 치성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하루는 全州(전주) 김준찬의 집에 계실 새, 김락범에게 물어 가라사대 關王廟(관왕묘)에 致誠(치성)이 있느냐 ? 대하야 가로대 있나이다. 가라사대 그 神明(신명)이 이 지방에 있지 아니하고 西洋(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나니,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3장 135절)
관우의 신명이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고 있다는 증산선생의 말씀은, 후대의 증산교단에서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관우가 증산선생의 공사에 협력하고 있다는 일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일로 믿어지며, 서양에서 난리를 일으킬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나아가 증산선생께서 몸소 관우의 얼굴로 변하는 이적을 행하기도 하시며,
관우의 묘호를 현무경의「病勢文(병세문)」에 기록하실 정도이다. (4장 129절)
< 六丁六甲 >
六丁(육정)은 도교의 神(신)이름이다.
後漢書(후한서) 권 50 「梁節王暢傳(양절왕창전)」에 “육정을 시켜 꿈을 풀 수 있다.”고 했고, 그 주에 “육정은 六甲(육갑) 가운데 丁(정)의 귀신이다.”고 했다.
증산선생은 六丁六甲(육정육갑)이라는 글귀를 쓰신 적이 있다. (4장 138절, 7장 22절)
한편 六丁(육정)은 陰神(음신)이고, 六甲(육갑)은 陽神(양신)인데, 모두 天帝(천제)의 명을 받들고 風雷(풍뢰)를 일으켜 鬼神(귀신)을 제어한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육정육갑은 수호신 또는 방위신으로서 민간에서 신앙되었고, 호신부적으로 그려서 몸에 간직하여 재난을 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한 친근한 신이었다.
증산께서 육정육갑신(六丁六甲神)들을 호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 천사 가라사대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일을 재촉하느냐 ? 六丁六甲(육정육갑)을 쓸어들일 때에는 살아날 자가 적으리로다 하시니라. (4장 15절)
< 糢嬚(망량) > * 본 글의 저자가 아닌 제가 한자(漢字)를 찾아보니 ====> 망량이 아닌 糢嬚(모렴)으로 나오네요
망량은 도깨비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장난을 치는 신격이다.
망량에 대해 증산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다.
--- 先天(선천)에는 道家(도가)에서 이 고기(개고기)를 忌(기피)하였으므로 糢嬚(망량) 이 응하지 아니하였나니라. (3장 130절)
증산선생은 인간이 먹는 음식(개고기)에 응하는 신으로 망량을 이해시키고 계시며
--- 天地(천지)는 糢嬚(망량)이 主張(주장) --- (3장 134절)
하늘과 땅이 망량신에 의해 이끌어질 것임을 밝혀주셨다. 이같은 내용도 기존의 망량에 대한 믿음에는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 五方神將(오방신장) >
神將(신장)은 장군의 권능을 지닌 신격으로 이해된다.
五方(오방)은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오방신장은 각 방위를 맡은 신격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오방신을 무속에서는 巫神(무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한편 증산선생은 오방신장을 불러서 천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다
--- 天下戶口(천하호구)를 成冊(성책)하야 오라 하시므로 대답하고 오방신장을 불러서 成冊(성책)하여 올림에 --- (4장 91절)
오방신장과 비슷한 용어로 怪疾神將(괴질신장) (2장 117절)과 四十八將(48장)이라는(3장 100절) 용어가 보인다. 이들은 각기 질병을 맡은 신장과 많은 수의 신장을 나타낸다.
그리고 二十八將(28장)과 二十四將(24장)은 (7장 11절)
각기 後漢(후한) 光武帝(광무제) (25년 - 56년) 때의 功臣(공신) 28명의 초상화를 그렸던 일이 후대에 28宿(28수)과 비견하여 신앙되었거나 唐(당) 太宗(태종)때의 공신 24명의 초상을 그렸던 일이 후대에 24節候(24절후)에 빗대어 신앙되었다.
증산교단에서는 이들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쭉 이어서 부르는 주문도 외우고 있다.
...................... 나머지는 다음시간에 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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