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심화토론 정리-대두목과 메시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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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거위의꿈 (121.♡.78.89) 작성일16-10-06 23:23 조회9,755회 댓글7건본문
※개념의 전달에 중점을 두다보니, 부득이 평어체를 사용 하였습니다.도생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본문은 증법도의 온·오프라인 토론이나 도담내용을 선별‧취합한 내용입니다.모든 도생님들의 각자의 사명을 위한 끝없는 구도의 여정에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기를 증법도가 기원드립니다.
※유명한 성언은 지면상, 원문을 별도로 표기 하지 않았습니다.9월달은 담당자가 바빠서 내용을 게시하지 못하였습니다.이점 도생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증법도의 사상-대두목과 메시야(3).
(부제:천지공사와 고수부님)
‘수부’의 사전적 의미: 여성의 우두머리.
‘수부’의 증법도적 의미: 여자 우두머리.여자 보스.옥황여제(가칭).(복수-여자 우두머리들.)
◇천지공사 속의 고수부님 (총 15항 예상).
2.지천태
하루는 약방 벽위에 "사농공상, 음양(士農工商, 陰陽)" 과 또 다른 여러 글자를 많이 써서 붙이시고 백지로 도배한 후에 자현을 명하시어 그 뜻가는 대로 밥 사발을 대고 도배한 곳을 오려 떼게하시니 음(陰)자가 나타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정히 옳도다." 하시고 "음과 양을 말할 때에는 음을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 괘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약장은 곧 안방의 장농이며 또 신주를 넣어두는 궤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종이를 뜯을 날이 빨리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이 뒤에 大興里에 가시어 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藥欌은 곧 네 농(籠)바리가 되리라 하시니라.) [대순전경 초판 6장 34절]
2-1.괘(역)철학의 허와 실.
상제님께서는 ‘지천태가 크니라’라고 하셨다.이것은 오독하면 ‘지천태가 옳다’라는 의미와 혼동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인식이 요구되는 성언이다.이 말씀은 곧,지천태 역시 정음정양이 아니라는 것이다.지천태는 천지공사의 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고정관념이다.하지만,지천태괘라는 등잔밑을 잘못 해석하면 상제님진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논리의 모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이를 스스로 명확히 하지 못하면, 서로가 동문서답 서문동답을 하며 끝없는 미로를 헤어나지 못하고 우리의 생을 탕진하게 하는 쉽고도 힘든 개념이다.
주역은 인간이 무위자연의 변화를 관념화 한 형상기호들의 조합이다.인류가 이룬 학문의 철학적 요소에서 주역의 입지는 독보적이다.흡사 철학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정도로 존재감은 크다.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역을 가장 심오한 형상철학의 성지로써 절대학문으로 평가한다.주역을 기본으로 한 여러 역철학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연구되고 활용되고 있다.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궁한 철학인 셈이다.하지만,종교를 포함한 정신철학과 관련지어서는 ‘악마의 서’라고 할 정도로 연구자의 정신을 옭아 맨다.그리고 안타깝게도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서로 전락해 버렸다.즉,깊은 심우주를 관찰하는 경전으로써의 지고한 가치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퇴색되어 개인의 우열을 다투는 개목걸이로 전락된 것이다.
그림:주역(가치관)의 폐단. 선천의 인간은 일정한 틀에 재단되고 획일화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특정 개인의 욕망은 이를 빌미로 조직을 사유화하고 개인적 목적달성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시도한다.이는 오로지 분열을 위해 끝없이 이합집산하는 고삐풀린 상극의 이치를 그대로 보여준다.그칠곳(순)에 그칠줄을 모르고 오히려 악(역)을 양산한다.대학지도의 이상은 애초에 땅에 떨어진 허상일 뿐이다.법은 사람을 쫒고 사람은 법을 쫒아 끝없이 돌고 돌 뿐이다.이는 ‘유는 부유니라’라고 하신 말씀의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주역(철학)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가두고 붕어빵 처럼 재단하여 정치와 교화(세뇌)는 할 수 있을 지언정,인간이 간직한 마음의 무덤으로 변질되어 인간은 주역과 철학의 날카로움에 두려워 스스로 이성의 노예가 되버렸다.그것이 선천의 한계이자 운명이다.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유는 부유’라고 하시며, 도모하고 지음에는 ‘지선’이 있음을 경책 하시며 분수를 지킬것을 당부하신 것이다.인간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셀 수 없는 법과 원칙들을 빽빽하게 쌓아 왔지만 결국 인간성은 그 쌓인 만큼 소멸되어 가는 것이다.인간이 완성되어 천지간에 거칠것 없는 호탕한 대자유인이 되는 후천조화선경과는 대조적인 이런 비극은 ‘천지비’가 주장하는 선천 상극의 한계이다.
어느날 고후비님이 도중을 모아 공부를 시키시며 가라사대 우리의 공부는 오장육부 통제 공부이니 곧 선각 지각이니라절후주 오주 태을주 일초 이초 삼초 끝에는 대인행차 하신 다네 너희들은 비복신 화기팔문 팔괘주역을 붙여 읽어봐야 맛이 나는 줄 알지만 그러나 이 모두는 선천 것이니라 이어서 가라사대 너희들은 높은 주문을 속 깉이 암송하라 함부로 세상에 알리면 못쓰느니라 하시더라. [선도신정경 합본 102절]
인간 스스로 주역(철학)의 팔진도에 중독되어 평생을 갇혀사는 것이다.즉,주역의 노예가 되버린 것이다.궁극적인 학문은 주역이 아니라 사람이다.사람이 있고 주역이 난 것이지 주역이 나고 사람이 난 것이 아니다.결국 인생의 끝에 남는 것은 선명한 괘들 뿐이다.괘의 노예가 되버리는 것이 선천의 학문이다.궁극적으로 주역을 포함한 역철학 그리고 학문들은 대우주와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무극과 인간의 마음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기 때문이다.결국은 옥황상제께 하소연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선천의 한계인 것이다.
이런 모순을 상제님의 자식인 우리들의 아쉬운 학문적 태도와 비교하자면,수많은 철학적 시도들과 더불어 대표적으로 현무경에 대한 광신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상제님과 수부님께서도 끝없는 논리의 꼬리를 쫒는 허망한 학문적 태도에 대해 경계하시며 경고하셨다.결국 우리들의 학문적 성취를 앞다투며 자웅을 겨루는 꼴이니, 주역(학문)의 그 정신만 취하고 말것을 당부하시며, ‘유를 부유’라고 하시고 그 철학적 딜레마에 주의하라고 하셨다.문자적 앵무새라는 알을 깨지 못하면 결국 마음이라는 최고의 난제를 포용하지 못한다.상제님께서 ‘주역은 개벽할 때 쓸 글이니,주역을 보면 내일을 알리라’하신 것은 천지를 개벽함에 만법을 합하지 않고는 안되겠기에 주역의 심오함을 한시적으로 인정해 주신 것이지, 주역을 평생 본다고 하여 상제님 진리의 궁극적인 진면목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즉,내일은 도통자도 모르게 한다고 하시며 그 기운을 걷으셨기 때문이다.실마리는 판밖에 있다고 하시며 ‘체를 잡아 근본을 파고 들라’고 강조하셨다.우리들은 시한부 개벽,진법주의,진주주의가 ‘체’인 마냥 착각하며 100년을 하루같이 달려왔고 또 달려간다.
지난 100년 동안 진리의 역사는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 처럼 달려왔다.종말개벽과 진주‧진법주의라는 달콤함만 보기 위해 스스로 씌운 눈가리개이다.진리를 독점하고 사유화하기 위한 편협한 지식층들의 우매함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성언성적에 대해 문자적인 해석과 그에 따른 뻔한 철학적 주석들이 전부이다.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이라는 혹세무민자들의 자작사당으로 인해 세간의 천재들이면 10년이면 족할 것을, 100년 동안 허송세월 한것이 되지 않토록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그들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만 보았던 것이다.우리가 안다고 하는 유상팔백주의 미련을 과감히 버리고 ‘될 일을 안되게 하고, 안될 일을 되게’하는 ‘그 심법’을 위해 천지를 닮아 매순간 일신우일신 하여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우리모두가 힘을 합하면 된다.혼자서는 자신을 올바로 볼 수 없는 것이다.미친듯한 자신을 돌아보아,수부님의 말씀처럼 수신으로 근본을 삼은 후 서로가 서로를 향할 때, 서로 닮아 가는 기적의 새기틀이 열릴 것이다.개벽은 멀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죽음은 늘 따라 다닌다. 선배신앙인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일진데 참으로 살피고 또 살피어 무엇이 중한지 진중히 가늠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날은 도인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이 육십사괘를 참으로 중하게 여기지만 괘명이나 알아 두라 그것만 들여다 보다가는 너희들의 신세를 그르치고 말 것이니라 하시더라. [선도신정경 합본 69절]
수부님 역시 64괘만 보다가는 신세를 그르친다고 하시며 괘명이나 알아두라고 하셨다. 심법(용공부)을 늘 강조하셨다.결과적으로 문자적 금자탑을 쌓은들, ‘용’을 못하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이다.심오한 주재자의 철학적 가르침은 시한부개벽과 메시야 노예신앙 그리고 진법주의를 증명하는 ‘물증’ 정도로 전락해 버리고, 깊은 뜻은 묻혀버린 것이 현 실정이다.상제님께서 천지개벽보다 마음고치기가 더 힘들다고 하신 것은, 그만큼 인간의 마음이나 법 역시 천지이치에서 파생된 ‘을’의 존재가 아닌,천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에 속하는 만만찮은 천리의 지극함임을 반증하신 것이기도 하다.천지공사에는 같은 공사이지만,천상과 지상에 따로 도수를 놓는 2중구조가 자주 보인다.인식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다룬 광범위한 천지공사지만,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그 구조에 놀랄 수 밖에 없다.역설적으로,인간세계의 구조 역시 천지만큼이나 절대적임을 알수있다.인간은 천지인삼계의 목적이자 결과이다.귀신이 천리의 지극함이라면 인간은 천지의 지극함이다.언젠간 우리도 신명이 될 것이다.그리고 인간을 예의주시하며 답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선생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布敎五十年工夫 終筆)"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이윤이 오십살에 사십구년동안의 그름을 깨달아 드디어 탕임금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다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이제 내가 천지의 운수 길을 굳게 고쳐 바로잡아서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니 너희들은 다만 마음을 한결같이 가져 타락하지 말고 나아가라. 이제 구년동안 행하여 온 개벽공사의 확증을 천지에 물어 결정하리니 너희들도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오직 천지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나타내 보이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문득 천둥과 지진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더라. [대순전경 초판 6장 81절]
하루는 제자가 모셨더니 말씀하시기를, 요임금이 백년동안 임금노릇 하였으니, 나의 포덕 원년이 경신년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평천하 오십년 하고, 너희들은 치천하 오십년 하노라. [천지개벽경(이중성) 9편 7장]
상제님께서는 9년의 대장정을 끝내시고 어천하시기 하루 전, ‘포교50년공부종필’이라 하시며 천지공사의 종결을 선언하셨다.이어서 ‘50에 49년의 그름을 깨달았나니 그 도수를 썻노라’하신 후, 다음 날 어천해 버리신다.상제님의 도수들은 2중 3중의 복합적인 구조로써 작용하는 것은 이미 일반화 되어있다.그러나,가장 위험한 풀이는 이 공사를 특정인물(메시야)에 비유하여 해석하는 것이다.굳이 사람에 대입한다면 불특정 다수이다.‘포교50년공부종필’ 역시 다중구조인 것만은 분명하다.그리고 그 도수의 주체는 1860(경신년)년에 수운 최제우선생에게 부여된, 인류최초로 주재자가 직접 내린 신교(물형부,천상문답)가 씨앗이 되어, 1909년 까지 50년 동안의 시공이 녹아있는 현무경(상제님의 평천하50년공부)임은 분명하다.
이 도수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현무경과 9년천지공사를 포함한 주재자의 ‘평천하50년공부’가 그르다고 해석할 수 있다.하지만,현무경을 둘러싼 니전투구와 같은 진법‧진주주의와 그 과정에서 양산된 시한부종말론과 메시야론등의 광신적 폐해가 문제이지 현무경 자체의 가치는 절대적이다.천지공사 역시 마찬가지다.문제는 우리가 현무경과 천지공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왜곡이다.우리는 누구나 알에서 깨었다고 자만하고 착각하며 도를 닦는다.‘49년 이윤도수’는 알에서 깨는 공사이다.상제님께서는 모든것으로 부터 두터운 알을 두드려 깨주실 것이다.우리 마음의 부리가 그 신호탄이다.결국은 우리 각자에게 달린 것이다.
-중략-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라 하시며 형렬의 딸을 안으로 들어 보내신 다음에 경석으로 하여금 그 글을 거두어 불사르라 하시고 천지공사를 끝마쳤다 선언하시니 경학이 여쭈어 가로대 이제 천지공사를 끝마치셨다 하오니 그러면 출세하사이다 하고 아뢰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사람이 없어서 출세치 못하리라 하시니 경학이 가로대 제가 비록 무능하오나 몸이 달토록 두 사람의 일을 대행하려 하나이다. 가라사대 그리되지 않느니라 경학이 고하여 가로대 그렇다면 우리들은 모두 쓸데없는 사람들이니 선생님을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으오리까 하면서 다른 종도들을 선동하며 밖으로 나가니 만류하시여 좀 기다리라 하신 후 가라사대 팔월 일일에 환궁하리라 하시며 포교오십년공부종필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옛 사람이 사십구년 동안의 그름을 오십살에 깨달았다 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중략- [선도신정경 합본 10절]
어천 하루전(6월 23일)에 보신 이 ‘49년 공사’는 충격적인 대반전이다.상제님 답다는 긍정(농판)과 함께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짐과 동시에 무중력이 된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 진다.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커다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폭잡을 수 없는 것이다.상제님께서는 자식들에게 거칠것 없는 무한대의 자유를 선사하시는 것이다.현무경 뿐 아니라 우리들이 쌓아온 모든 것들에 대해 본질적으로 자유롭게 풀어 놓으시는 것이다.우리들이 가진 고정관념들에 대한 정신적개벽, 그것이 이 도수의 핵심이다.현무경과 기존에 알던 인간의 고정관념에 대한 재조명을 당부하신 반전의 도수이다.진정으로 묵은것에 대한 일신우일신의 심법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림:이윤도수는 상제님 당신의 ‘유상팔백주’를 승화하는 공사이다.
이쯤에서 분수를 잃은 것이 바로 자칭천자나 메시야들의 망상이니 참으로 그칠곳(지선)은 어디인가?. 대학지도는 재지어지선(정음정양으로 해석)이라는 말을 명심하여 그칠곳을 짐작하여 분수를 아는 것이 도를 닦는 기본일 것이다.괘들은 천지의 이치를 본뜬 허상일 뿐, 평생을 바쳐 제 무덤파듯 팔만한 학문은 아닌 것이다.그리고 억양존음인 지천태가 지향하는 정음정양의 운로는 용공부(심법,오장육부통제공부,치천하)를 통해 그 이상이 이루어진다.결국 사람이 중한 것이다.천지공사의 결론은 사람이다.실의에 차서 돌아서는 김경학종도(사람)를 불러 세우시며,만법을 합하시고 그 만법의 겁기를 누른 마지막 공사인 ‘49년공사’를 끝으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어천하셨기 때문이다.만법귀일은 상제님이시지 또 다른 한사람이 아니다.공교롭게도 우리에게도 이윤 처럼 ‘그름’을 살필만한 시간대가 있다.그것은 이윤보다 더 긴 100년이 넘는 시간대이다.그 긴 시간동안 하루가 멀다하며 개벽을 기다리고 진주를 기다리고 혹은 자칭진주라 하며 진법교단임을 자처하며,그렇게 하루살이 처럼 살아왔다.그러나,상제님진리의 원형은 100년 후의 우리에게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 각자가 바로 ‘그사람’이다.지금 이글을 보고있는 당신이,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시는 바로 ‘그사람’이다.모두가 기다리는 그 ‘한사람’이 바로 당신이다.50년의 알을 깨부순 이윤도수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다.이것은 논리의 모순이나 유희가 아닌 가장 합리적인 진실임을 증법도는 늘 강조하고 있다.바로 당신 때문에 대우주천지는 새로워지는 것이다.지난 한세기 동안 알며 믿어왔던 고정관념들에 대한 원형을 밝히고 재정립하여 새로운 기틀을 여는 것이 천지와 후손을 위한 우리들의 시대적 사명이다.
다시 주역으로 돌아가서,궁극적으로 64괘는 허상이다.64괘가 심오하나 광대무변한 대우주와 그를 닮은 인간의 마음을 담을 수 없다.인간은 무리수(루트2) 조차 평생을 바쳐도 다 적을 수 없다.앞서 언급되었 듯이 인간이 천지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정지시켜 꾸민것 일뿐 천지는 매순간 사라지고 매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것인바 64괘만 보다가는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모르고 소나무나 대나무 처럼 늘 푸른 철부지가 되는 것이다.
평생을 괘수레만 돌리며 희노애락에 빠져 논리의 노예로써 헛꿈만 꾸다가, 노름꾼처럼 정신을 놓고 허망해 지는 것이다.즉,괘라는 형상은 천변만화하는 마음이라는 인간의 무극을 표현할 수 없다.그렇지만 정음정양은 누구나 안다.그만큼 마음의 직관은 위대한 것이다.각자가 알고 있는 것이다.괘와 형상과 말과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우리 모두는 안다.여기에 천지보다 더 큰 마음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다만 주역을 보면 내일을 알리라 하시며 인정해 주신 한시적인 참고서중의 하나일 뿐이다.어찌 상제님께서 인정해주신 이치가 주역 뿐일런가?. 만법은 상제님의 것이다.
천지가 생긴이래 가장 큰 덕은 춘생추살의 은위이다.그것은 천지 자신뿐 아니라,인간을 포함한 천지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에 적용되는 천지의 덕이다.그 덕은 영원한 도의 유지를 위한 끝없는 빅뱅(개벽)이다.인간의 세포는 2시간~7년이면 완전한 새세포로 대체된다.이런 유지를 위한 영속성에 가장 적당한 이치는 지천태이다.천지비는 유지하는 데에는 부적합하다.음양이 서로 대립하거나 분열하려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음양의 상대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구조이므로 종국에는 스스로의 작용으로 쌓인 재(엔트로피)에 덮여 자멸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하지만 지천태는 끝없이 교합하거나 스스로 통일과 안정을 찾으려는 속성(음) 때문에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훌륭한 자동화 시스템이다.즉,무위이화로써 스스로 그러한 이치로 반본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천지비괘(좌)와 지천태괘(우).
지천태를 잘못 해석하면 큰 혼란을 낳는다.이치만 바뀔 뿐 본질은 그대로이다.여성이 주도하는 형국의 사회가 되겠지만, 남녀동권이며 만물이 정음정양의 상생으로 돌아가는 조화로운 선경세계인 것이다.지천태 자체는 정음정양이 아니나, 그 변화가 정음정양을 지향하는 것이다.지천태에 대해 명확한 개념을 세우지 못하면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서로 동문서답 서문동답을 하는 끝없는 미로에 빠진다.
천지비괘와 지천태괘는 건괘와 곤괘의 조합이므로 음양변화를 나타내는 괘들중에서 머리에 해당한다.64괘를 사람이라고 가정하면,이 두괘는 다른 괘들의 변화에 대해 주장자이다.인간으로 치면 괘들중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대장부이자 여장부이다.상제님의 말씀처럼 문선왕끼고 송사하는 무소불위의 ‘넘버투 괘’들이다. 변화의 대장군들인 것이다.가정으로 치면 장남 장녀이다.
선천은 천지비가 주장하고 지천태가 따라가는 형국이라면, 후천은 지천태가 주장하고 천지비가 따라가는 것이다.상제님께서 우주의 주재자로써 ‘지천태가 크니라’라고 천지에 명시하시면 천지비를 포함한 다른 음양변화(괘)는 자연히 따라가는 이치이다.건곤이 모든 변화를 포괄하는 궁극이기 때문이다.즉,머리를 들면 조리가 펴진다는 상제님의 말씀에서 건괘와 곤괘는 머리와 같다.또 상제님의 말씀에 해(여자)와 달(남자)을 바꿔놓았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지천태괘를 말씀하신 것이다.그리고 천지비와 지천태는 군주에 해당하는 불변의 건괘와 곤괘를 제외한 나머지 60괘들의 통솔자들이다.흡사 자동차의 핸들과 같은 것이다.군신지의로써 건과 곤의 어명을 받아 60괘들을 통솔하는 변화의 머리이다.
예를들면,상제님께서 삼계에 대해 어떤 일을 도모하시려면, 천지비나 지천태중 특정괘에 기운을 붙이심으로 나머지 괘들이 활성화하여 자연히 그 운로가 열리는 것이다.이런면에서 지천태가 크니라 라고 말씀으로써 천지에 질정 하시면 천리와 인사가 그 명에 의해 지천태를 중심으로 자연히 재정렬되는 것이다.천지비와 지천태에 비유하면 만고의 두 대장부 중에 ‘지천태가 크다’하시며 지천태의 손을 들어 올려주시니 인간세계의 지극함 역시 그것을 본뜨는 것이다.지천태라는 천지의 운로가 열리려 할때, 우주의 주재자께서도 도수를 놓으시니, 천리와 인간사가 맞아떨어지는 어명이 되는 것이다.여기서 까마귀 날자 배떨어 진다는 속언과 같이 절묘한 ‘천지공사의 규범’과 ‘무위자연의 도수’가 부절과 같이 합일하는 무위이화의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엿볼 수 있다.지천태의 세상에 천지만신과 인간이 역시 성언을 통해 지천태의 운로에 자연스럽게 동화하는 이치이니 참으로 상제님의 법은 신묘막측하고 물샐 틈이 없다.
그림:천지비와 지천태의 힘의 이동.
그리고 참고할 점은 선천이나 후천이나 지천태와 천지비는 항상 공존한다는 점이다.다만 그 변화의 주체를 어느괘가 주장하느냐의 문제이지 하나의 괘(이치)만으로는 원형이정의 연속성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선지포태 불지양생’이라는 말씀으로 유추하면, 지천태는 선지포태이며 천지비는 불지양생이다.상제님께서는 ‘포태의 운’이라고 하셨다.후천은 지천태가 주장하므로 천지만물을 지천태가 포태하는 것이다.하지만,선천에는 지천태가 한 가정의 자기 자식만 포태하므로 상극의 부속물일 수 밖에 없었다.또한,지천태에 의해 포태된 진리의 ‘조아’는 어미만을 믿어 무서운 것이 없다.곤도는 지엄하다.땅이 조금만 흔들려도 인간은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영혼까지 흔들려 ‘건도’조차 빛을 잃는다.
여기서 주의점은 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천리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선천이나 후천이나 하늘이 인간세계의 뿌리임은 절대적인 이치이다.현상계의 뿌리는 실상계이기 때문이다.‘모사재천 성사재인’이라는 상제님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변화의 주체는 늘 하늘이다.하늘은 천지인삼계의 수도(서울)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즉,하늘이 땅이되고 땅이 하늘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선천이나 후천은 그 변화의 근본(기)은 변하지 않는다.다만 이치(리)만 바뀌어서 상생의 운로가 되는 것이다.상제님께서 남방에 앉으시고,수부님께서 북방에 앉으시듯 ‘위’만 바뀌는 것이지,남방과 북방이라는 기본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방위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알면 도에 가깝다’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서 ‘선후’를 구분하여 가릴 줄 아는 것이 모든 학문(인식)의 요체임을 알 수 있다.
선천은 목적인 ‘지선’이 천지비괘의 외부를 둘러싸므로 끝없이 판밖으로 확장 분열한다.지천태는 이기의 변화가 항상 중심에 있는 지선을 향한다.선천은 지선이 상극분열의 영향으로 음과 양이 각각 다른 것에서 지선을 찾으니 끝없이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이런 천지비의 분열은 결국 각각의 지경(궁극)에 우수한 유전자만 수렴하는 금수의 수문장(12지지)들이 지켜 그 열매를 이루나,그 속은 늘 비어 허전하니 유지하기가 힘들어 하늘이 늘 바쁘다.지천태 후천은 하늘과 사람이 늘 서로 닮으려 내내하므로 자연히 지선이 인도의 규범이 되어 무위이화의 조화(상생)가 늘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지천태와 천지비의 속성표.
※본문 내용이 용량을 초과하는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표’로써 대체 하였습니다.추후에 연관주제를 다룰때 집중적으로 내용을 빠짐없이 올려 드리겠습니다.이점 도생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3편 끝.
증법도를 찾아주시는 모든 도생님들께 상제님과 고수부님을 위시한 천지신명님들의 가호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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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의 무단재단및 불법도용은 증법도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법적인 책임이 따릅니다.특히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개인및 특정 교단에서 진리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사용할 시에는 혹세무민으로 간주하여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이점 양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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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술잎숟가락님의 댓글
술잎숟가락 아이피 223.♡.188.139 작성일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칠성동자님의 댓글
☆칠성동자 아이피 223.♡.234.35 작성일알기쉽게 친절한 도표와 한땀한땀 장인의 정신이 들어간 주옥같은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거위의꿈님의 댓글
거위의꿈 아이피 121.♡.78.89 작성일저는 대필만 했을 뿐입니다.아무튼 감사합니다.
adagio님의 댓글
adagio 아이피 116.♡.101.70 작성일알듯말듯 뭔소린지 수준짧아서 전 공부좀 더 해야겠네요
적계승마하분명님의 댓글
적계승마하분명 아이피 211.♡.142.176 작성일감사합니다~~다음도 기대해봅니다
Equalizer님의 댓글
Equalizer 아이피 210.♡.140.134 작성일
글이 다 이해가 안가서 다시 읽어봅니다! 인간이 천지이치를 이해하기위해 시간을 정지시켜 꾸민 것일뿐 !!!
정말 놀라운 표현같습니다. 전보단 쪼금 더 이해했읍니다!
김해김님의 댓글
김해김 아이피 118.♡.20.4 작성일잘읽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