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호롱불(펌)6_다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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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12-09 14:30 조회7,174회 댓글1건본문
다스칼작성일13-06-28 07:10조회276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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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체이탈 실상과 .doc (272.5K)22회 다운로드DATE : 2013-06-28 07:25:19
우리는 참된 마음으로 반성해 보아야한다.
신을 믿는다면서 신을 저질로 표현하고 있다.
신이 가장 위대한 조물주(造物主)라고 하면서 조잡한 인간에 빗대어 비교한다.
신이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변덕쟁이, 편협하기 짝이 없는 졸장부 정도로 평가절하(平價切下)하고 있다.
누가?
바로 우리들-기독교인(基督敎人)들이 그러고 다닌다.
이런 부분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천주교인들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놈은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학교도 잘 다녔고 아버지의 소망대로 의사가 되어 돈도 잘 벌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위치에 이르러 흡족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제 멋대로 하였다.
시키는 대로하지 않고 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다녔다.
가라는 법대는 가지 않고 자동차 정비에만 매달렸다.
형은 의사가 되었는데, 동생은 기름때 찌든 정비공이 되었다.
아버지는 남 보기에 창피스럽고 분해서 자식으로 인정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있는 재산 다 털어서 큰아들에게는 병원을 지어주고
고생하고 있는 작은아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큰아들은 외견상 불편한 것이 없었다.
일류 대학 나와 유능한 의사가 되고, 부모의 힘으로 젊은 나이에 자신의 건물에 개업도 하고 부모도 모시고 있고, 아버지의 주선으로 돈 많고 예쁜 여자와 결혼도하였고.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강요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결혼까지 당신 마음대로 정해버려 사랑하는 사람과 결별하고
말았다.
그는 이 세상에 혼자 밖에 없었다.
동생까지 집에 오지 못하게 아버지가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들 용기가 없었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했다가는 동생처럼 쫓겨나 좋은 집과 고급승용차, 골프채를 잃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동생의 몫까지 자기 차지가 되었으니까.
어려서부터 자기만을 사랑해 주었고, 자신의 갈 길을 일일이 정해 주었고,
전 재산을 물려준 아버지가 그에게는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단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작은아들도 아버지를 존경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편협하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했고 불쌍해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늙어 병들고, 힘이 없어지자
큰아들 내외의 불화 때문에 함께 살수가 없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양로원에 돈과 함께 맡겼다.
이제는 아버지의 진로를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모셔다가 임종 때까지 봉양하였다.
또 다른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평생 막노동을 했다.
자식을 일곱 명이나 두었는데, 어떤 놈은 악착같이 공부해서
선생도 되고, 어떤 놈은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공업학교를 나와서 취직해서 살림을 도왔고, 또 다른 놈은 학교를 중퇴하고 중국 집 배달원이 되었다가 후에 주방장이 되었고, 또 다른 놈은 어려서 가출하여 감방을 제집 드나들 듯 하였다.
아버지는 늘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겨우 세끼 밥 먹여준 것 외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식들을 무척 사랑하였고,
특히 일찌감치 비뚤어진 길을 가고 있는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하였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결국 사랑의 힘으로 다시 태어났다.
훗날 그는 장사로 성공하여 큰 점포를 운영하였고, 부모를 정성껏 모셨다.
첫 번째 얘기의 아버지는 재산이 많지만 자식을 편애하여 미워하는 자식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두 번째 아버지는 물질적으로는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사랑으로 아이들을 길렀다.
자식을 편애하는 것은 부모로써 가장 못할 짓이다.
그것은 사랑 받는 자식과 미움을 받는 자식, 그리고 당사자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한다.
앞에서는 미소를 짓지만, 돌아서면 비웃게 된다. 충고해 주는 이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남의 충고 따위는 듣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이 정도의 편협한 인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엄청난 착각이다.
왜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지금도 그러하지만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전교(傳敎)의 대상이 모두 가난하고, 고달픈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가난하고, 억울하고, 병들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나약하기 때문에 무언가 미지의 힘에 의존하여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거나 반전되기를 희망한다.
현재의 처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상대를 용서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자신을 깨끗하게 다스리면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치기엔 너무나 막연하고 서글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고자 조금씩 변형해서 가르친 것이
지금에 와서는 형편없이 왜곡된 기복 (祈福)신앙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들은 점점 참된 인성을 상실해 간다.
사이비 종교나 사교(邪敎)들은 애초에 기복신앙을 미끼로 사람들을 모으고,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무지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악마 같은 자들이 하는 짓이지만, 기독교나 불교에서조차 기복 신앙으로 신도들을 몰아가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매스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개화(?)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교 집단은 오래 버티기도 힘들고 신도들을 모으는 것이 점점 힘들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기독교나 불교의 탈을 쓰는 사이비 종교인이 많이 생겨났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는 종교인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일신의 부귀영달을 위하여 그런 짓을 하는 종교인들이 들끓고 있으니 천국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사이비 종교인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첫째, 그들은 반드시 기복 신앙을 조장한다.
입으로는 그럴싸한 말을 하지만, 주요 골자는 현실에서 복을 받고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고, 그러기 위해서 교인들을
교회 테두리 안에 묶어두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 성서(성경)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성서를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 자신의 의지대로 해석하거나
흐름을 왜곡시키기 위해서 한 구절만 떼어내서 필요한곳에
갖다 붙인다.
특히, 신구약을 섞어 적당히 뜯어 맞추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의 재산을 우려내는 방법을 총 동원한다.
셋째, 어떤 특정인물을 초능력자로 부각시켜 신도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안수 기도, 안찰 기도 등으로 연출된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어버린다.
기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회, 그 같은 행위를 자랑하는 목사와 전도사들이 판치는 장소와 사람들은 의심해야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그런 부류들은 많은 기적을
조작한다.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다 해도 그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가톨릭에서는 기적이 발생하더라도 감추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을 반기고, 떠들고,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을 흠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심해지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탈을 쓴 사이비들은 대개다 기적을 이용하며 성서를 악용한다.
성서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자면 한이 없다.
살인, 강도, 강간, 불륜 행위조차까지 합리화시킬 수 있다.
제발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속지 말기를 바라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불교(佛敎)의 탈을 쓴 자들은 어떤가?
그들도 비슷하다.
특히 “나는 언제 득도(得道)했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사이비라고 보면 된다.
어째서 그런가?
득도(得道)의 경지를 잘은 모르지만, 진실로 득도한 사람은 그것을 자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득도를 했노라고 자랑하며, 신도를 모으고, 그러한 것을 기화로 치부하는 자들의 말로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필자를 아는 어떤 사람이 필자에게도 권유를 했다.
어떤 단체를 만들거나, 새로운 종파를 설립하라고.
그렇게 한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그때 필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그러한 발상이 사이비로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잘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지 아는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습니까?”
유체 이탈의 목적을 설명하다보니 장황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분들은 목적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댓글목록
광호만세님의 댓글
광호만세 작성일
저는 지금도 기독교(천주교)집안의 유일한 상제님신앙인(20살 무렵인 약15년 전 JSD교단 입도 후 얼마전 탈퇴선언)이지만 제가 느끼는 개신교와 천주교는 서로 외면상 조금 차이가 있을뿐 결과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유아기(아동기)에 7~8년간 개신교를 다녔고,청소년기인 6년간 천주교를 다녀본 경험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그리고 외가쪽은 독실한 기독교집안(개신교 여섯,천주교 셋,불교 하나)인지라 사실상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와 인연이 있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그러나 기독교왜곡을 느낀 것은 저희 집안에서 유일하게 저 하나입니다.제가 15년 전부터 신앙해온 JSD는 상제님도판이라기가 부끄럽게도 기독교와 많이도 닮아 있습니다.타교단을 인정치 아니하는 점이나 타종교를 깍아내리는 점이나...게다가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 대신 위선을 행하는 점이나 JSD가 상제님의 도인 상생 대신 위선을 행하는 점이 너무 닮아있습니다.성자의 종교랑 성부의 종교가 이리도 닮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거기다가 기독교에서도 완전 이단으로 낙인찍힌 신천지는 종교철학만 다를뿐 JSD랑 더 많이 닮아있습니다.이는 제 친구가 신천지신도인지라 역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 유체이탈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았으며 관련영상도 보았습니다.또 JSD 공부할 때 늘 들었던 이야기로 충분히 내용은 짐작합니다.제 생각에는 JSD의 창교주이시고 한때 많은 종도님들의 태사부셨던 안o찬 님도 저런 유체이탈을 경험하시고 스스로 해원판의 길로 걸어들어가 JSD를 창교하지 않으셨나 싶습니다.물론 이건 저의 소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