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과 실상과 실행(호롱불-최종회)_다스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12-09 15:51 조회8,978회 댓글0건본문
유체이탈과 실상과 실행(호롱불-최종회)
<:SECTION id=bo_vc>
다스칼작성일13-06-30 13:44조회284회 댓글6건
호롱불님의
"유체이탈과 실상과 실행" 나머지 장들을 한꺼번에 실습니다.
제가 전 게시글에 "유체이탈과 실상과 실행" 텍스트 파일을 올려드렸는데요.
다운받으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로그인 하지 않는 상태로 글을 읽고 있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보시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https://docs.google.com/file/d/0ByEVgBLE_q0FV2dNejVWWjVhaWc/edit?usp=sharin <==전체파일 링크
http://blog.daum.net/t-innovation/13661546
유체이탈의 실상과 실행
제 3장. 귀신은 있는가?
여러 사람이 필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다 지어낸 이야기지...”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정하든 말든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있다고 우겨도 없게 마련이지. 귀신이 별건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지. 나도 귀신으로 변할 것이고, 당신도 마찬가지야.
다만,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의 그런 귀신은 없지.”
“귀신이 있다면 어디 데려와 보쇼. 그러면 내 믿겠소.”
“증명할 방법도 없지만, 자네가 믿든 말든 나와 상관이 없네, 그런데 내가 무엇이 안타까워 자네에게 증명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자네가 굳이 알고 싶다면 만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는 있네.”
“어디 설명해보소. 내 그 귀신을 만나보리다.”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설명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게. 내 말대로 실행한다면 오늘밤에라도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유체 이탈 방법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에구, 무시라.”하고 부르르 떨더니 하면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왜 우리는 귀신을 볼 수 없을까?
우리가 기(氣)를 느끼면서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귀신은 육신(肉身)이 없는 기(氣)로 존재하고 있다.
귀신이 남의 육신을 빌려 나타났다고 치자.
우리 눈에 귀신으로 보이겠는가? 보통 사람처럼 보이겠는가?
당연히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귀신을 볼 수 없다.
보았어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귀신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육신을 버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나도 귀신이 되어야만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이승과 분리되어 저승에 편입하게 된다.
저승은 어디인가?
죽은 자들의 세계를 통 털어 저승이라 하자.
이승처럼 천차만별의 세상이 그쪽에도 존재한다.
천국, 또는 천당이라 하는 곳은 제일 좋은 곳이다.
윤회의 업을 벗어난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선도(仙道)에서는 이곳을 동천복지라고 하며 세분하여 36동천 72복지라고 부른다.
우리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곳도 그렇게 많은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아래 여러 단계의 여러 층이 존재하고 있다.
필자가 그분에게 물었더니(저쪽 세상에 가서) 크게 일곱으로 나눈다고 했다.
확인할 바는 없지만 필자가 돌아다니며 본 것은
이 세상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곳이 있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 죽은 자의 세상이 있다.
이 세상이 물질의 세계요 양의 세계라면 여기는 음의 세계요 비 물질의 세계다.
이 세상과 똑같은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다. 집도 같고, 가구도 같다.
인간이 만든 것은 그쪽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에너지가 없다.
인간들이 만든 전기는 순간적으로 발생하고 순간에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텔레비전을 켜도 작동을 않고, 등(燈)도 켜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밤은 무척 어둡다.
낮에는 어떨까?
낮에는 그쪽도 밝다.
태양 에너지는 지속적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죽은 자의 세상도 밝혀준다.
그 때문인지 죽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지만 급사(急死)한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
87년 필자가 임의로 유체이탈이 가능했을 때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잠옷 차림의 중년 남자를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 이 밤중에 길가에 나와 앉아 있습니까?”
“글쎄, 자다가 더워서 길가에 나왔는데 집을 찾을 수가 없어요. 분명히 이 근처인데...”
그는 자다가 죽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집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머지않아 자신이 죽은 줄 알게 되겠지만 얼마나 헤매고 다닐지 모를 일이다.
철들지 않은 어린애들은 더 심하다.
언젠가 이탈해서 방안을 둘러보니 여자아이들 셋이 자고 있었다.
제일 큰놈은 5, 6학년쯤 되어 보이고 둘째 놈은 2, 3학년,
작은놈은 대 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얘들아 너희들 누군데 남의 집에 들어와 자고 있나, 너희들은 형제니?”
아이들이 겁을 먹고 경계를 했다.
“괜찮아. 아저씨한테 얘기해봐.”
제일 큰놈이 입을 열었다.
“얘들은 제 동생들인데, 막내가 물에 빠져서 건지려고 하다가
함께 빠져 죽었어요.”
“저런, 불쌍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래, 언제 죽었는데 이렇게 헤매고 다니나?”
“5년쯤 되었을 거예요.”
“5년씩이나 갈길 못 찾고 헤매다니... 불쌍한 녀석들 같으니....
얘들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돼. 하늘나라에 가면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아저씨가 데려다 줄 테니 따라가겠니?”
큰놈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째도 별 반항 없이 따라 나서는데 막내는 앙탈부렸다.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혼날까봐 겁이 나서 그랬는지, 죽은 자의 세상에서 머무는 저질인 어른들이 괴롭혀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겁을 내고 앙탈이 아주 심했다.
제일 큰놈과 필자가 양쪽에서 손을 잡고 겨우 데려다 주었는데, 필자의 손을 물어뜯고, 발버둥치고, 아무튼 대단히 힘들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들은 이미 환생해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잘 자라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바램이지만....
그 녀석들 다시 태어났으면 물을 대단히 무서워할게 틀림없다.
부모가 일찌감치 수영교실에 보내서 가르치면 물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겠지만.
여관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급한 볼일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고 잠시만 봐달라고 하기에
졸지에 여관 주인노릇을 했다.
그런 곳에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있나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가 보았다.
요즈음 여관이란 곳이 여행자는 별로 없고 잠깐 동안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 때문인지 한낮인데도 방마다 색정관계로 한이 맺힌 자들이 뒤엉켜 있었다.
죽은 자의 세상에는 이승 같은 부부관계도 없고, 연인 사이도 없다.
윤리, 도덕도 없고, 법도 없다.
그래서 무질서하고 엉망이요 난잡하다. 방마다 모두 그랬다.
어느 방문을 열어보니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처녀가 혼자 누워있었다.
필자를 보더니 몹시도 부끄러워하였다.
“얘야, 너는 어찌해서 이런 곳에서 혼자 누워있니?”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수줍게 웃으며 이불을 잡아당겨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난잡한 처녀는 아닌 것 같았다.
”얘야,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된단다.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지만 이런데 있으면 못된 놈들만 만나게 된단다. 잘못이 있었으면 대가를 치르고 다시 태어나야지... 다시 태어나면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도하고 아기도 낳아서 예쁘게 기르고 싶지 않니? 그러자면 이곳을 떠나야한단다. 내가 데려다 줄 테니 나를 따라올래?”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필자를 따라 나섰다.
심성이 착한 처녀 같았으니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른다.
이성관계로 한이 맺힌 망령들은 이성을 찾아 헤맨다.
죽은 자의 세상에는 그런 망령들이 득실거린다.
숙박업소에는 그런 자들이 짝을 지어 열심히 행위를 해보지만,
만족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육신이 없기 때문에 사정(射精)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족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88년이던가...
어느 날 집밖에 나섰더니 군화 발소리가 요란했다.
일개 소대쯤 되어 보이는 군인들이 열을 지어 구보하고 있었다.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맨 앞의 인솔자를 불러 세웠다.
“여보시오. 당신들 이 밤중에 왜 이렇게 떼를 지어 다니고 있소?”
“우리는 전쟁 중에 우리 진지에 포탄이 떨어져 소대 전원이 함께 죽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그냥 이렇게 다니고 있어요.”
수십 명의 소대원들이 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다.
그저 소대장 뒤만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여보시오 소대장, 전쟁이 끝 난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까지 갈 곳을 못 찾고 헤맨단 말이요? 참으로 한심한 일이군. 저쪽에 산이 보이시오?”
“예!”
“그리로 올라가시오. 중간쯤 올라가면 작은 집이 하나 보일 거요. 그 집은 죽은 사람을 받아주는 곳인데 그리로 가시오. 그러면 당신의 임무는 끝이요.”
그는 거수경례를 하고 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져 갔다.
이런 일들은 너무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다.
독자 중에서도 이런 일을 숱하게 겪을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설프기도 하고, 두려움에도 떨게 될 일도
생길 것이나 실행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게 될 것이며,
두려움에서도 해방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95년이었는데, 현재의 시점은 1998년 11월 중순이다.
요즈음은 자주 이탈을 하지 않고 있다. 생업이 그리 순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누가 찾아오거나 주위에 있는 것을 느끼면 몸이 저절로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이탈을 하는데 어김없이 누군가 집안에 들어와 있다.
며칠 전인 11월 초순경에 어떤 아이가 찾아왔다.
오륙 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얘야,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니?”
“.....................”
“너는 누구냐?”
“제 이름은 이 비례(혹은 이 미례, 미래) 라고 해요.”
“너는 언제 죽었니?”
“작년에(97년) 잠실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런데 왜 죽은 자의 길을 가지 않고 지금까지 떠도는 거지?”
“안돼요.”
“왜 안돼? 내가 데려다주련?”
“우리 집 전화번호가 000 국에 0000 이예요. 연락 해 주세요.”
“그래, 아저씨가 연락해주마.”
그러고 있는데 험상궂은 남자가 뒤따라와서 싫다는 아이를 끌고 가버렸다.
이런 경우 필자로선 막을 방법이 없다.
순간적으로 끌고 가버렸기 때문에 전혀 힘을 쓸 수도 없고,
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방법을 몰랐다.
끌려가는 아이가 싫어한다는 것은 느꼈으나 도리가 없었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연필을 찾아 전화번호를 적었지만
번호의 앞자리 수 하나가 아물거렸다.
아침에 비슷한 번호를 다 생각해 보고 전화를 했지만
정확한 번호는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버렸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97년 잠실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이 비례, 혹은 미례, 미래>라는 아이를 아는 분은 필자에게 연락 바란다.
아이를 악마 같은 사내에게서 해방시켜줄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한다.
물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부모들도 그럴 필요가 없다.
이와 유사한 일로 대가를 바라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계해야한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힘든 상태에 있으니 해결해주면 좋다.
하지만 필자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경우다.
부모가 해주어야한다.
현실에 관여하는 귀신이야기
필자가 참으로 하기 어려운 얘기가 이런 종류의 귀신이다.
분명히 그런 존재들이 있기는 한데, 필자가 직접 만나 본적도 없고, 얘기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여인으로선 담이 큰 편이었고,
평소에 귀신같은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70년도에 울릉도에 한 달 동안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울릉도는 귀신 얘기가 참으로 풍부한 곳이었다.
재미있는 얘기도 많았고, 으스스한 얘기도 있었지만, 그저 재미로 들었을 뿐이었다.
특히, 도깨비 얘기가 많았다.
그 지방 사람들은 “허재비”라고 불렀다.
당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려면 꼬불꼬불 험한 산길을 한참씩이나 걸어야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허재비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해떨어지기 전에 마실을 다녔는데, 어느 날 좀 늦게 다녀야 할 일이 생겼다.
필자는 어두워지기 전에 먼저 왔고, 어머니와 이모는
어두워진 다음에 출발하여 한밤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앉아서 얘기하고 있다가 어머니가 이모에게 물었다.
“참, 아까 산으로 올라올 때, 우리 앞에 조그만 아가(아이가) 앞서서 쫄랑쫄랑 걸어가더니 한참 오다가 보니 안보이데...
어느 집 아인데 밤중에 혼자 댕기노?“
어머니가 묻자 이모는 빙그레 웃었다.
“못 본 줄 알았는데, 니도 봤구나?”
“그럼, 봤지.. 늦은 밤에 왼 아가 댕기나 생각했지...”
“가는(그 아이) 가끔 나온다.”
“가끔 나온다니?”
“밤에 걷다보면 대 여섯 발자국 앞서서 한참 걸어가다가
없어져 버린다. 꼭 같은 자리에서만 나와서 움직인단다.“
“그게 누군데?”
“나도 모른다. 옛날부터 그랬다.”
“그러면, 그게 사람이 아니가? ”
“그래.”
“어마나..우야꼬... 그 아가 귀신 인가베.”
이모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아까 진작 얘기하지... ”
“니가 놀랠까봐 말 안 했지.”
“세상에... 그런 꼬마귀신이 있네...”
어머니는 매우 신기해 하셨다.
이모는 그 아이를 여러 번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담이 큰 분이셨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
필자가 묵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어린아이의 혼령이
무슨 일로 사람들 앞에 자주 출현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아무에게 해꼬지도 하지 않으면서 자꾸 나타나서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 것일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명부에 들기 위함인가?
객사한 어린아이가 부모나 집을 찾지 못하고 자신이 죽은
장소를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졸지에 사고로 아이를 잃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어떤 남자가 있었다.
노모를 모시고 있었고 고3인 아들, 아내, 시집 간 누이.
평범한 가족이며 모두가 독실한 교인(敎人) 집안이었다.
어머니가 가실 때가 거의 되자 미리 묘 자리를 사두었다.
어머니가 당신이 묻힐 자리를 보고 싶어 해서 보여드렸더니
펄쩍 뛰면서 안 된다고 하였다.
왜 그러냐고 아들이 물었더니 무조건 그 자리에는 절대로 묻지 말고 다른 곳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죽으면 천국에 갈 텐데 무덤이 별거냐...
얼마 후 어머니가 죽고 그 자리를 매장하려고 팠더니 물이 질퍽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한 것이라 강행해 버렸다.
이미 돈 주고 산 땅이고, 독실한 교인이 묘 자리를 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장하고 돌아오자마자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누이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딸은 어머니의 소원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라비에게 얘기했더니 무슨 헛소리냐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느닷없이 아내가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아내의 반응도 누이와 비슷했지만, 교인이 미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무시했다.
이번에는 고3의 아들 차례였다.
아들이 산소를 옮겨달라고 애원했지만, 역시 무시해버렸다.
그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제가 죽어요...” 하면서
3층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이 있었던 실화다.
풍수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거의 본능만 남게 된다. 교인이라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만든 흔적 외에는 없어진다고
앞서 얘기한 바 있다.
이것은 종교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학식과도 관계가 없다.
그것은 자신밖에 모르며, 절대 속일수도 없는 것이다.
한이 맺힌 채 죽게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때로 한(限)은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는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한 맺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것처럼 한은 불행을 낳고, 불행은 다시 한을 만든다.
한은 업을 만들고...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물어왔다.
그럭저럭 살기가 괜찮은 집인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자손이 귀한 집에 예쁜 딸이 출생하였다.
아들이 아니었지만, 몹시도 귀하게 길렀다.
아이는 예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모의 사랑은 물론이고 조부모의 사랑도 지극했다.
특히, 아이의 할아버지는 너무도 끔찍하게 아이를 사랑했다.
그런데, 아이가 하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정신박약아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론 어려움이 없던 터라 좋다는 병원을 다녔지만 허사였다.
아이의 증세는 점점 심해져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때쯤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이 필자에게 문의해왔다.
무슨 그런 황당한 일이 다 있느냐고...
그 사람들도 모두 독실한 교인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아주 평범하고
순한 성품이란다.
할아버지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성깔이 있고,
옛날에 공직에도 있었고, 주위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데
그 아이에게만은 지나칠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6.25 전쟁을 전후해서 혹시 애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적은 없는지, 재물 때문에 타인을 해한 적은 없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필요이상으로 반응을 하며 펄펄 뛰더라고 했다.
자신을 반성하면 혹시 길이 있을지도 모를 텐데, 역시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그렇게 판단을 했던 것은 과거 전력에 대해서 느끼는바가 있어서였다.
이런 경우 교인이라는 명분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다.
결국, 몇 천 만원을 얹어서 아이는 먼 지방의 어떤 시설로
보내졌고, 그들은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불행은 모두 우리들이 만드는 것이다.
신이 우리를 시험하려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악마가 심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우리들 탓이요, 내 탓인 것이다.
정계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불행을 자주 볼 수 있다.
엄청난 재산을 가졌던 사람들도 불행해지고 후손들은 다시
고난에 빠진다.
왜 그럴까?
왜 그들은 그 권력과 금력으로 좋은 일은 하지 않을까?
왜 후손들의 불행과 자신에게 다시 다가올 불행을 외면하는 것일까?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면 그렇게 산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니 문제인 것이다.
할머니의 방문.
1990년경 필자가 부지런히 유체이탈을 실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꿈에 남루한 차림새의 할머니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할머니였다.
“배가고파요. 나 밥 좀 주시오.”
“할머니는 뉘신데 저를 찾아와 밥을 달라고 하십니까?”
“배가 고파요. 밥 좀 주시오.”
“할머니는 후손도 없어요? 그 사람들이 제사도 지내지 않는답니까?”
“배가 고파요”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작고하신 어머니가 다가왔다.
“그 할머니가 누군지 모르겠니?”
“아, 어머니. 이 할머니는 도대체 누군데 나한테 와서
막무가내로 밥을 달라고 합니까?“
“옛날에 돌아가신 너의 친 할머니시다.”
“예? 이분이 정말 우리 할머니였어요?”
“그렇단다.”
“할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 형님께 말씀드려서 오늘부터 제사를 지낼게요. 만일 형수 때문에 제사를 못 지내겠다면 제가 먹을 밥이라도 드릴게요.”
필자의 조부는 전도사였다.
말이 전도사지 교회도 직책도 없는, 단신으로 전교활동을 하던 분이셨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교회가 없는 타향에 가셔서 열심히 전교활동만을 하셨다고한다.
그러니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할머니 혼자 어떻게 살았겠는가?
제대로 먹이지 못한 자식들은 어린 나이에 차례로 병들어 죽어갔다.
자신과 가족마저 돌보지 않던 조부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역시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났다.
어머니는 얼굴도 보지 못한 시어머니 제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노년에 병들어 형님 댁에 들어가면서부터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다.
형수가 다니던 개신교에서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절대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7, 8년을 보냈고, 어머니가 떠난 후 필자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할머니가 필자를 찾아와 배고프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아침에 일어나 이 황당한 사건을 형님께 전했으나
예상대로 형님은 제사를 모시지 못한다고 하였고,
필자는 부랴부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사상을 올렸다.
이후, 십 년이 넘도록 기일에 제사를 지냈고, 할머니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주린 배를 채우셔서 한을 풀고 명부에 들었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이 끝 날 때까지 제사는 계속할 생각이다.
제4장<전생(前生)과 윤회(輪回) >
요즈음 전생(前生) 여행이란 책이 유행이다.
전생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무슨 TV프로 제목 같다.
TV 에서도 가끔 얘기 거리로 다루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스스로 알기 힘든 분야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물론 윤회(輪回)하기 때문에 전생(前生)도 있고 전 전생(前 前生)도 있고, 당연히 다음생도 존재한다.
믿거나 말거나 있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지금의 생이 일 백 네 번째라는 것도 앞서 얘기한바 있다.
유체 이탈을 실행에 옮겨보는 사람은 그것이(윤회) 사실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윤회설(輪回說) 운운 하고 있는데,
윤회설 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윤회의 법칙을 부정하는데 에서부터
출발한다.
“환생을 한다.” “무슨 근거로 하는 소리냐, 과학적인 증명을 해 보아라.”
이런 논쟁은 하지말자.
서로를 말로써 납득 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논쟁은 장님끼리 귀동냥으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생전 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한 코끼리의 크기나 생김새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윤회의 법칙을 몸소 겪은 사람은 논쟁하지 않는다.
논쟁으로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윤회는 불변의 법칙일 뿐이다.
꼭 전생(前生)을 알 필요가 있을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것이라고 단정한다.
모든 사람들이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회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끔직한
세상이 될 것이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전생에 대해 궁금해 왔다.
그것은 현실에서의 고통이 전생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전생에서 내가 죄를 지어서 현실에서 고통을
받나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전생의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찾아내 어떻게 하든 그 갚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84년경 단편적으로 전생을 구경했다.
구경이 아니라 당시로 돌아가 그 체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죽기 바로 직전의 경험이었다.
당시에 나는 변발한 중국인(中國人)이었다.
필자의 나이 스무 살 전후였고, 어떤 연유로 그런 끔직한 형을 당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팔 다리를 모두 잘린 채로 서서히 죽어갔다.
그 때문에 숨이 넘어갈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고,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니, 기억이 아니라 당시로 돌아가 다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팔 다리가 잘리는 순간 아프지는 않았지만 몹시 시큰거렸다.
팔 다리가 다 잘린 몸뚱이는 수북한 시체더미 위로 던져졌으나
데굴데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양 팔과 다리가 모두 절단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굴러 뺨이 땅바닥에 닿았고, 다른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와 썩은 물이 뺨을 적셨다.
썩는 냄새가 코를 진동했고 의식이 가물가물 멀어져 갔다.
그렇게 하여 죽음을 다시 겪었고, 그리고 높은 하늘을 날았다.
저 멀리 아래로는 넓고 검푸른 바다를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단편적인 전생 체험은 별 의미가 없었다.
전체를 다 알고 싶었다.
어느 나라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든 사실을 다 기억해 내고 싶었다.
그래야만 현실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금생(今生)의 일들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전생을 알려고 그토록 애를 쓰다니.
금생에서의 일을 생각해보자.
10년 전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크게 충격 받거나 심각했다거나 하는 중요한 사실들만
대충 떠오르고 세세한 기억은 없다.
어릴 적 필자가 걸음마를 하다가 화로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덴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방안 풍경이 어렴풋이 보이고 내 앞에 몇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누구인지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가 정확하게 언제쯤인지 알 수 없었다.
서너 살쯤 되었겠지 하고 생각하다 언젠가 어머니께 물었더니
첫 돌 조금 지나서였단다.
겨우 걸음마를 하다가 화로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데었지만,
흉터는 남아 있지 않다.
사실 그 정도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필자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워낙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너 댓 살쯤 되었을 때 형들을 따라다니며 부서진 탱크를 놀이터로 알고 들락거리던 일들도 단편적으로 기억이 날뿐이다.
그래서 자기최면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 가보기로 작정했다.
조용한 어느 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으로 몰입하였다.
맑은 마음으로 들어가자 기억을 스스로 퇴행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을 거슬러 조금씩 과거로 돌아가면서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10년, 20년, 30년, 40년전...
점차적으로 아주 어린아이 시절까지 내 의지로 돌이켜 보았다.
잘 생각나지 않던 것도 보이기는 했으나,
당시의 기억이나 체험을 완벽하게 재생할 수는 없었다.
다음단계는 전생(前生)이었다.
전생(前生)으로 가자고 마음먹었을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힘에 의해서 끌려 들어갔고(깊고 어두운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연이어 소리도 지를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다.
멈출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필설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고통에 휘말려 들어갔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산채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토막토막 잘라내는 고통이라고 해야 하나, 생 다리나 팔을 톱으로 잘라내는 것 같기도 하고,
사금파리로 뼈를 깎아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한동안 지속되던 고통이 끝나고 그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 나왔다.
검은 양복에 금발의 젊은 사내가 다가오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따라갔더니 별로 크지 않은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내가 물었다.
“조금 전의 그 엄청난 고통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이 그렇습니까?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이 그토록 엄청난 것이라면 살아서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참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하고 단숨에 말을 토해냈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명함크기의 하얀 쪽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ooooo ooooo"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가지고 태어날 이름이었습니다.”
“아니, 내 이름은 김 0 0 이지 이것은 아닌데요.”
“당신은 원래 그 이름으로 스웨덴에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 땅에 태어났지요?”
“그쪽에서 거부당했기 때문입니다.”
“거부당했다는 얘기는 무슨 뜻인지...”
“낙태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의 그 엄청난 고통은?”
“그렇습니다. 당신이 시간을 거슬러 왔기 때문에 낙태당시의 고통이
되살아 난거지요.”
“세상에! 그렇게 낙태의 고통이 그렇게 지독하다니....”
나는 경악했고, 나 자신 또한 그런 고통을 누군가에게 준 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속죄했다.
모르고 한 짓이지만 잘못은 잘못이요 죄는 죄다.
이 부끄러운 얘기를 하는 것은 나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줄어들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준엄하게 금지했었다.
세월에 따라 약간 변질된 점이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살인(殺人)이다.
그리고 그것은 천명(天命)을 거역(拒逆)하는 행위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처럼 고통을 겪는다 해도 전생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전생여행이란 책을 통해서 호기심이 부쩍 일었을 것이고, 녹음테이프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행해 보았지만 대부분이 실패했을 것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다니는 작은아들 녀석도 잘 안되더라고 얘기했다.
“아빠, 이거 가짜 아닙니까?”
“이거 엉터리 아닙니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네가 전생을 알아서 어디 쓸려고 그러니? 네가 전생을 꼭 알아야만 할 절실한 무언가 있으면 내가 도와주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네가 전생을 알고자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겠지...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믿거나 말거나 전생은 누구에게나 있었고, 또 삶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내 말을 믿고 너는 네 공부나 해라. 지금은 네가 그런 일에 마음 쓸 시기가 아니다.”
아들에게는 이 정도의 얘기로 진정시키고 말았다.
상대가 학생이라면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러나 꼭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몇 마디 부언하겠다.
가장 확실하게 알고 싶으면 타인 최면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가면 된다.
테이프를 이용해서 실행하자면 방법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이 유체이탈을 실행하는 방법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약간 달라져야 하고 준비상태가 조금 달라져야만 한다.
유체 이탈은 육신을 잠재워야하기 때문에 육신이 잠을 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전생여행을 하기 위한 것은 그래서는 안 된다.
즉, 자기최면을 해야 하는데, 육신이 피로해서 잠을 자려고 할 때에는 실행해 보았자 꿈속으로 빠져버린다.
따라서 전생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충분히 잠을 자 둔 상태에서 실행을 해야 꿈이나 환상으로 빠질 확률이 낮다.
그리고 한두 번 해보고 “에이, 엉터리구나.”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
한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열 번이라도 해서 성공을 해야 하고
그 중에서 한두 번의 성공으로 얻은 결론을 진짜라고 단언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열 번을 성공해도 거의 대부분이 환상이나 꿈을 볼 확률이 높다.
수 십 번을 실행에 옮겨 성공을 하다보면 그 중에서 확실한 것이 잡힐 것이다.
필자도 타인에 의해서 최면을 받아 본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방면에 많은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해결되리라는 것은 안다.
막연하게 자기최면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실망을 할 것이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최면으로 전생의 체험을 일부분 재현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다루는 제작자와 그 과정을 보면서 출연자들이 낄낄거리고, 비웃고 하는 것을 방영하였다.
필자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너무 경박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시술자가 대학교수였는데 그 사람에 대한 예의로써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장난꺼리로 다룰 성질은 더더욱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한다.
자신의 전생을 발견한다는 것은 정신세계의 폭을 넓히는 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을 한 번 보고 나서 “당신의 전생은 왕자였다”, “공주였다”하고 쉽게 단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생년월일만을 가지고 전생을 운운하는 것도 신빙성이 없는 얘기다.
그리고 타인의 전생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생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한 두 번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게 된다.
전생을 깊이 파고 들다보면 언젠가는 짐승으로 살았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다.
그때가 되어야 재미로 짐승을 죽이는 행위 - 사냥이란 얼마나 잔혹한 취미인지 깨닫게 된다고 한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하늘이 내린 특권인줄 착각하여 여자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생에서 여자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경험해야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자신을 무분별한 섹스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짓은 스스로 축생(畜生)이 되는 지름길이란 것을 알아야한다.
백인들은 우월감으로 유색인종을 멸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지방 사람을 멸시하기 잘하고, 동족인 조선족도 무시한다.
양키는 양키라고 멸시하고, 동남아 사람들은 못산다고 무시하고 색깔이 검다고 무시한다.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민족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필자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
무분별한 살생을 하지 마라는 가르침이나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가 심심해서 해본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고 새겨야한다.
그것은 진리(眞理)요 불변(不變)의 법칙이다.
믿어라, 못 믿겠다, 하는 어리석은 논쟁은 하지 말자.
그것은 다 소용없는 짓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비로소 제 것이 된다.
남의 경험, 남의 깨달음은 자신에게는 소용이 없다.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야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길로 가는 중요한 열쇠중의 하나가 유체이탈이요, 전생체험이다.
호기심으로 접근하거나 장난으로 다룰 소재가 아니란 것을 분명히 해두자.
전생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필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아래에 설명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우선, 자기최면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최면을 나름대로 연습해 본 사람들은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나,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최면유도 테이프로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보건데 최면유도 테이프는 최면유도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초보자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잠을 충분히 자두지 않은 상태라면 수면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기최면의 경험이 없는 사람의 경우,
우선 충분히 잠을 자둔 상태에서 시작하자.
테이프를 틀기 전에 편안하게 앉아서 명상을 해보자.
명상하는 방법을 모르면 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한다.
우선,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호흡을 조절한다.
눈을 감은 채 시선을 코끝으로 모은다.
처음에는 눈 근육이 아플 수도 있지만 곧 숙달이 된다.
그 상태에서 자기호흡의 길이에 맞게 호흡을 하되
배나 가슴이 불룩 올라오거나 푹 꺼지도록 호흡량을 늘이면 안 된다.
아주 미약하게 숨을 쉬되 고르게 쉰다.
이때, 하나, 둘, 셋, 넷. 속으로 세어가면서 숨을 쉬어도 좋고,
정신, 통일 . 이런 구호를 마음속으로 불러가며 세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시선의 집중과 호흡의 정숙이다.
5분에서 10분사이면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 정도는 정신집중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최면유도 테이프를 틀어야한다.
최면유도 테이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코끝에 고정시킨다.
시선을 코끝에 두는 것은 중요한일이다.
정신집중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상단전에 기가 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초보자가 단번에 의식을 전생까지 끌어내리기에는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개개인마다 능력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번에 성공할 수도 있고, 여러 번 시도를 해야 가능하기도 한다.
최면유도 테이프로 연습을 여러 번 해보아서 성공했거나
이미 자기최면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굳이 유도테이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해진다.
우선 정신집중을 하고 호흡을 편하게 하여 호흡으로 인한
폐의 움직임이 거슬리지 않게 되면, 아주 편안하게 누운 다음에 온몸을 발끝에서부터 목까지 차근차근히 거슬러 올라가면서 긴장을 풀어나간다.
그 다음에 스스로 의식을 단계별로 퇴행해간다.
예를 들자면 10 년, 20년 이런 식으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의식 상태를 과거로 돌린다.
의식 퇴행이 제대로 된다면 잊어버렸거나 희미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또렷해 질 것이다.
금생의 기억을 거의 다 퇴행이 되었으면 전생으로 가자고 스스로 명령한다.
가장 가까운 전생으로
이 방법으로 전생에 도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1) 온 몸의 긴장을 풀고 근육을 차례로 이완시킨다.
2) 열에서 하나까지 거꾸로 세면서 다 세었을 때에는
팔다리는 물론 머리를 제외한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오직 뇌만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잘되지 않았으면 반복한다. 계속 반복 하다보면 실제로 다른 부분의 감각은 거의 느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3) 눈앞에 이십 계단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라.
그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면 맨 아래에는 문이 있다.
그 문은 전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렇게 암시하고 나서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세어가면서
내려간다.
4) 눈앞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생으로 들어간다고 암시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5)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이 눈에 보이면 자신의 손, 발등을 살펴본다.
6)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사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두 번의 시도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전생체험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가능한 것이다.
여러 차례 시도하다보면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평소에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날 가능성이 많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였고. 그전에 간간이 경험했던 전생의 기억들은 한결같이 남자였고, 연대가 제법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자세히 알아보려고 시도하니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1951년생이다.
가장 가까웠던 전생은 1949년에 사망한 것이었다.
1949년에 사망하고 1951년에 환생한 것이다.
사망 후 환생하기까지의 시간이 고작 이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삼사십 년에서 수백 년까지의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더 놀라운 일은 당시의 나는 여자였던 것이었다.
혹시 잘못 들어갔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십 수 차례 시도하여 확인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기다란 여성특유의 팔과 손. 다리와 발의 모양. 틀림없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국적은 확실히 알 수 없었고 불어와 이태리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의 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있고, 딸이 둘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불행한 시절을 보내고 불행한 방법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더 이상의 접근은 어려웠다.
자기최면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보는 타인최면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어찌되었든, 가장 가까운 전생에 내가 여자였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서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독자여러분들 중에서도 자신의 성(性)이 달라진 것을 경험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좀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 전생을 확인하는 것이 쓸데없고 허무맹랑한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신비로운 어떤 세계를 탐험한다거나, 초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전생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신세계에 대한 아주 작은 열쇠를 갖는 것에 불과하다.
자랑 할 일도, 자부심을 가질 일도 아닌 것이다.
그저 원래 있던 여러 가지 현상 중 지극히 일부를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잡담>
A는 독실한 기독교(개신교) 신도다.
어느 날 A가 물었다.
“전생이 어디 있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는데...“
“성서가 전부는 아니외다.”
“성서가 전부가 아니라니요? 그런 불경(不敬)이 어디 있소?"
“전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생이 어디 있어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단 한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믿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간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또 공평하신 분이라고
하였는데, 같은 처지에 처한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논리에 의하면 하느님은 지독한 심술쟁이에다가
욕심쟁이요.“
“아니? 무슨 그런 불경스런 소리를 합니까?”
“세상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 없이 편하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장애자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세상에 버려져 모진 고통을 받다가 굶어 죽는 이들도 있소. “
“그래도 하느님의 똑같은 축복으로 태어났습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축복이란 자신들만이 선택되었다는 이기심,
자만심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질병과 기아의 고통으로 죽어 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본다면, 더구나 당신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하느님의 축복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
“교회의 역사를 아십니까?”
“.................................”
“성서가 언제 씌어 졌는지 아십니까?”
“.................................”
“성서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씌어 졌는지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성서를 들먹입니까, 당신네 목사에게 물어보면 믿음이 부족해서 엉뚱한 의문을 품는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니 내 말해주리다. 가장 중요한 예수의 행적이 사복음서에 나와 있는 것뿐이니 사복음서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사복음서는 누가 썼는지 아십니까?”
“마태오, 누가(루까), 마가(마르꼬), 요한이 아닙니까?"
"흔히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다르답니다.
예수께서 살았을 때에 숨죽여 지내던 사람들이 삼사십 년이나 지난 후부터 예수의 언행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는데, 불행하게도 모두 작자미상 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히브리어를 몰라서 헬라어(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는데, 헬라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상류 계급이나 랍비등 지식인층이었습니다.
비슷한 연대 우리의 경우를 보면 이해하기 쉽겠지요.
우리는 한자를 사용하였고, 한자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지배계층이었습니다.
예수를 존경하던 그들이(성서 원작자) 예수 사후 삼사십 년이나 지난 후부터 글로 남긴 것은 그들이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썼거나,
그 얘기를(예수의 행적) 전해들은 후세들이 썼기 때문에 나중에 쓴 것은 거의 백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무엇이 겁이 났던지 그들 모두 자신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했던 것도 있고, 말씀만 기록했던 것도 있는데, 말씀만 기록했던 것을 어록(語錄)이라고 합니다.
당시까지 일정한 형식 없이 집회하던 교회는 문서로 된 책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입니다.
당시 초기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해져오는 여러 가지 문서들을 취합하고 교정하여 신약성서를 만들었는데,
마태복음, 요한복음, 하고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4세기경입니다.
예수가 죽은 후 거의 400 년이 흘렀을 때 교회의 지표인 성
"유체이탈과 실상과 실행" 나머지 장들을 한꺼번에 실습니다.
제가 전 게시글에 "유체이탈과 실상과 실행" 텍스트 파일을 올려드렸는데요.
다운받으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로그인 하지 않는 상태로 글을 읽고 있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보시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https://docs.google.com/file/d/0ByEVgBLE_q0FV2dNejVWWjVhaWc/edit?usp=sharin <==전체파일 링크
http://blog.daum.net/t-innovation/13661546
유체이탈의 실상과 실행
제 3장. 귀신은 있는가?
여러 사람이 필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다 지어낸 이야기지...”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정하든 말든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있다고 우겨도 없게 마련이지. 귀신이 별건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지. 나도 귀신으로 변할 것이고, 당신도 마찬가지야.
다만,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의 그런 귀신은 없지.”
“귀신이 있다면 어디 데려와 보쇼. 그러면 내 믿겠소.”
“증명할 방법도 없지만, 자네가 믿든 말든 나와 상관이 없네, 그런데 내가 무엇이 안타까워 자네에게 증명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자네가 굳이 알고 싶다면 만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는 있네.”
“어디 설명해보소. 내 그 귀신을 만나보리다.”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설명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게. 내 말대로 실행한다면 오늘밤에라도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유체 이탈 방법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에구, 무시라.”하고 부르르 떨더니 하면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왜 우리는 귀신을 볼 수 없을까?
우리가 기(氣)를 느끼면서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귀신은 육신(肉身)이 없는 기(氣)로 존재하고 있다.
귀신이 남의 육신을 빌려 나타났다고 치자.
우리 눈에 귀신으로 보이겠는가? 보통 사람처럼 보이겠는가?
당연히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귀신을 볼 수 없다.
보았어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귀신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육신을 버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나도 귀신이 되어야만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이승과 분리되어 저승에 편입하게 된다.
저승은 어디인가?
죽은 자들의 세계를 통 털어 저승이라 하자.
이승처럼 천차만별의 세상이 그쪽에도 존재한다.
천국, 또는 천당이라 하는 곳은 제일 좋은 곳이다.
윤회의 업을 벗어난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선도(仙道)에서는 이곳을 동천복지라고 하며 세분하여 36동천 72복지라고 부른다.
우리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곳도 그렇게 많은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아래 여러 단계의 여러 층이 존재하고 있다.
필자가 그분에게 물었더니(저쪽 세상에 가서) 크게 일곱으로 나눈다고 했다.
확인할 바는 없지만 필자가 돌아다니며 본 것은
이 세상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곳이 있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 죽은 자의 세상이 있다.
이 세상이 물질의 세계요 양의 세계라면 여기는 음의 세계요 비 물질의 세계다.
이 세상과 똑같은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다. 집도 같고, 가구도 같다.
인간이 만든 것은 그쪽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에너지가 없다.
인간들이 만든 전기는 순간적으로 발생하고 순간에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텔레비전을 켜도 작동을 않고, 등(燈)도 켜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밤은 무척 어둡다.
낮에는 어떨까?
낮에는 그쪽도 밝다.
태양 에너지는 지속적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죽은 자의 세상도 밝혀준다.
그 때문인지 죽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지만 급사(急死)한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
87년 필자가 임의로 유체이탈이 가능했을 때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잠옷 차림의 중년 남자를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 이 밤중에 길가에 나와 앉아 있습니까?”
“글쎄, 자다가 더워서 길가에 나왔는데 집을 찾을 수가 없어요. 분명히 이 근처인데...”
그는 자다가 죽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집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머지않아 자신이 죽은 줄 알게 되겠지만 얼마나 헤매고 다닐지 모를 일이다.
철들지 않은 어린애들은 더 심하다.
언젠가 이탈해서 방안을 둘러보니 여자아이들 셋이 자고 있었다.
제일 큰놈은 5, 6학년쯤 되어 보이고 둘째 놈은 2, 3학년,
작은놈은 대 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얘들아 너희들 누군데 남의 집에 들어와 자고 있나, 너희들은 형제니?”
아이들이 겁을 먹고 경계를 했다.
“괜찮아. 아저씨한테 얘기해봐.”
제일 큰놈이 입을 열었다.
“얘들은 제 동생들인데, 막내가 물에 빠져서 건지려고 하다가
함께 빠져 죽었어요.”
“저런, 불쌍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래, 언제 죽었는데 이렇게 헤매고 다니나?”
“5년쯤 되었을 거예요.”
“5년씩이나 갈길 못 찾고 헤매다니... 불쌍한 녀석들 같으니....
얘들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돼. 하늘나라에 가면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아저씨가 데려다 줄 테니 따라가겠니?”
큰놈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째도 별 반항 없이 따라 나서는데 막내는 앙탈부렸다.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혼날까봐 겁이 나서 그랬는지, 죽은 자의 세상에서 머무는 저질인 어른들이 괴롭혀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겁을 내고 앙탈이 아주 심했다.
제일 큰놈과 필자가 양쪽에서 손을 잡고 겨우 데려다 주었는데, 필자의 손을 물어뜯고, 발버둥치고, 아무튼 대단히 힘들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들은 이미 환생해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잘 자라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바램이지만....
그 녀석들 다시 태어났으면 물을 대단히 무서워할게 틀림없다.
부모가 일찌감치 수영교실에 보내서 가르치면 물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겠지만.
여관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급한 볼일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고 잠시만 봐달라고 하기에
졸지에 여관 주인노릇을 했다.
그런 곳에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있나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가 보았다.
요즈음 여관이란 곳이 여행자는 별로 없고 잠깐 동안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 때문인지 한낮인데도 방마다 색정관계로 한이 맺힌 자들이 뒤엉켜 있었다.
죽은 자의 세상에는 이승 같은 부부관계도 없고, 연인 사이도 없다.
윤리, 도덕도 없고, 법도 없다.
그래서 무질서하고 엉망이요 난잡하다. 방마다 모두 그랬다.
어느 방문을 열어보니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처녀가 혼자 누워있었다.
필자를 보더니 몹시도 부끄러워하였다.
“얘야, 너는 어찌해서 이런 곳에서 혼자 누워있니?”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수줍게 웃으며 이불을 잡아당겨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난잡한 처녀는 아닌 것 같았다.
”얘야,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된단다.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지만 이런데 있으면 못된 놈들만 만나게 된단다. 잘못이 있었으면 대가를 치르고 다시 태어나야지... 다시 태어나면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도하고 아기도 낳아서 예쁘게 기르고 싶지 않니? 그러자면 이곳을 떠나야한단다. 내가 데려다 줄 테니 나를 따라올래?”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필자를 따라 나섰다.
심성이 착한 처녀 같았으니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른다.
이성관계로 한이 맺힌 망령들은 이성을 찾아 헤맨다.
죽은 자의 세상에는 그런 망령들이 득실거린다.
숙박업소에는 그런 자들이 짝을 지어 열심히 행위를 해보지만,
만족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육신이 없기 때문에 사정(射精)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족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88년이던가...
어느 날 집밖에 나섰더니 군화 발소리가 요란했다.
일개 소대쯤 되어 보이는 군인들이 열을 지어 구보하고 있었다.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맨 앞의 인솔자를 불러 세웠다.
“여보시오. 당신들 이 밤중에 왜 이렇게 떼를 지어 다니고 있소?”
“우리는 전쟁 중에 우리 진지에 포탄이 떨어져 소대 전원이 함께 죽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그냥 이렇게 다니고 있어요.”
수십 명의 소대원들이 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다.
그저 소대장 뒤만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여보시오 소대장, 전쟁이 끝 난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까지 갈 곳을 못 찾고 헤맨단 말이요? 참으로 한심한 일이군. 저쪽에 산이 보이시오?”
“예!”
“그리로 올라가시오. 중간쯤 올라가면 작은 집이 하나 보일 거요. 그 집은 죽은 사람을 받아주는 곳인데 그리로 가시오. 그러면 당신의 임무는 끝이요.”
그는 거수경례를 하고 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져 갔다.
이런 일들은 너무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다.
독자 중에서도 이런 일을 숱하게 겪을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설프기도 하고, 두려움에도 떨게 될 일도
생길 것이나 실행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게 될 것이며,
두려움에서도 해방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95년이었는데, 현재의 시점은 1998년 11월 중순이다.
요즈음은 자주 이탈을 하지 않고 있다. 생업이 그리 순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누가 찾아오거나 주위에 있는 것을 느끼면 몸이 저절로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이탈을 하는데 어김없이 누군가 집안에 들어와 있다.
며칠 전인 11월 초순경에 어떤 아이가 찾아왔다.
오륙 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얘야,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니?”
“.....................”
“너는 누구냐?”
“제 이름은 이 비례(혹은 이 미례, 미래) 라고 해요.”
“너는 언제 죽었니?”
“작년에(97년) 잠실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런데 왜 죽은 자의 길을 가지 않고 지금까지 떠도는 거지?”
“안돼요.”
“왜 안돼? 내가 데려다주련?”
“우리 집 전화번호가 000 국에 0000 이예요. 연락 해 주세요.”
“그래, 아저씨가 연락해주마.”
그러고 있는데 험상궂은 남자가 뒤따라와서 싫다는 아이를 끌고 가버렸다.
이런 경우 필자로선 막을 방법이 없다.
순간적으로 끌고 가버렸기 때문에 전혀 힘을 쓸 수도 없고,
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방법을 몰랐다.
끌려가는 아이가 싫어한다는 것은 느꼈으나 도리가 없었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연필을 찾아 전화번호를 적었지만
번호의 앞자리 수 하나가 아물거렸다.
아침에 비슷한 번호를 다 생각해 보고 전화를 했지만
정확한 번호는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버렸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97년 잠실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이 비례, 혹은 미례, 미래>라는 아이를 아는 분은 필자에게 연락 바란다.
아이를 악마 같은 사내에게서 해방시켜줄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한다.
물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부모들도 그럴 필요가 없다.
이와 유사한 일로 대가를 바라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계해야한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힘든 상태에 있으니 해결해주면 좋다.
하지만 필자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경우다.
부모가 해주어야한다.
현실에 관여하는 귀신이야기
필자가 참으로 하기 어려운 얘기가 이런 종류의 귀신이다.
분명히 그런 존재들이 있기는 한데, 필자가 직접 만나 본적도 없고, 얘기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여인으로선 담이 큰 편이었고,
평소에 귀신같은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70년도에 울릉도에 한 달 동안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울릉도는 귀신 얘기가 참으로 풍부한 곳이었다.
재미있는 얘기도 많았고, 으스스한 얘기도 있었지만, 그저 재미로 들었을 뿐이었다.
특히, 도깨비 얘기가 많았다.
그 지방 사람들은 “허재비”라고 불렀다.
당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려면 꼬불꼬불 험한 산길을 한참씩이나 걸어야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허재비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해떨어지기 전에 마실을 다녔는데, 어느 날 좀 늦게 다녀야 할 일이 생겼다.
필자는 어두워지기 전에 먼저 왔고, 어머니와 이모는
어두워진 다음에 출발하여 한밤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앉아서 얘기하고 있다가 어머니가 이모에게 물었다.
“참, 아까 산으로 올라올 때, 우리 앞에 조그만 아가(아이가) 앞서서 쫄랑쫄랑 걸어가더니 한참 오다가 보니 안보이데...
어느 집 아인데 밤중에 혼자 댕기노?“
어머니가 묻자 이모는 빙그레 웃었다.
“못 본 줄 알았는데, 니도 봤구나?”
“그럼, 봤지.. 늦은 밤에 왼 아가 댕기나 생각했지...”
“가는(그 아이) 가끔 나온다.”
“가끔 나온다니?”
“밤에 걷다보면 대 여섯 발자국 앞서서 한참 걸어가다가
없어져 버린다. 꼭 같은 자리에서만 나와서 움직인단다.“
“그게 누군데?”
“나도 모른다. 옛날부터 그랬다.”
“그러면, 그게 사람이 아니가? ”
“그래.”
“어마나..우야꼬... 그 아가 귀신 인가베.”
이모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아까 진작 얘기하지... ”
“니가 놀랠까봐 말 안 했지.”
“세상에... 그런 꼬마귀신이 있네...”
어머니는 매우 신기해 하셨다.
이모는 그 아이를 여러 번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담이 큰 분이셨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
필자가 묵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어린아이의 혼령이
무슨 일로 사람들 앞에 자주 출현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아무에게 해꼬지도 하지 않으면서 자꾸 나타나서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 것일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명부에 들기 위함인가?
객사한 어린아이가 부모나 집을 찾지 못하고 자신이 죽은
장소를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졸지에 사고로 아이를 잃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어떤 남자가 있었다.
노모를 모시고 있었고 고3인 아들, 아내, 시집 간 누이.
평범한 가족이며 모두가 독실한 교인(敎人) 집안이었다.
어머니가 가실 때가 거의 되자 미리 묘 자리를 사두었다.
어머니가 당신이 묻힐 자리를 보고 싶어 해서 보여드렸더니
펄쩍 뛰면서 안 된다고 하였다.
왜 그러냐고 아들이 물었더니 무조건 그 자리에는 절대로 묻지 말고 다른 곳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죽으면 천국에 갈 텐데 무덤이 별거냐...
얼마 후 어머니가 죽고 그 자리를 매장하려고 팠더니 물이 질퍽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한 것이라 강행해 버렸다.
이미 돈 주고 산 땅이고, 독실한 교인이 묘 자리를 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장하고 돌아오자마자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누이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딸은 어머니의 소원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라비에게 얘기했더니 무슨 헛소리냐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느닷없이 아내가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아내의 반응도 누이와 비슷했지만, 교인이 미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무시했다.
이번에는 고3의 아들 차례였다.
아들이 산소를 옮겨달라고 애원했지만, 역시 무시해버렸다.
그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제가 죽어요...” 하면서
3층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이 있었던 실화다.
풍수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거의 본능만 남게 된다. 교인이라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만든 흔적 외에는 없어진다고
앞서 얘기한 바 있다.
이것은 종교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학식과도 관계가 없다.
그것은 자신밖에 모르며, 절대 속일수도 없는 것이다.
한이 맺힌 채 죽게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때로 한(限)은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는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한 맺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것처럼 한은 불행을 낳고, 불행은 다시 한을 만든다.
한은 업을 만들고...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물어왔다.
그럭저럭 살기가 괜찮은 집인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자손이 귀한 집에 예쁜 딸이 출생하였다.
아들이 아니었지만, 몹시도 귀하게 길렀다.
아이는 예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모의 사랑은 물론이고 조부모의 사랑도 지극했다.
특히, 아이의 할아버지는 너무도 끔찍하게 아이를 사랑했다.
그런데, 아이가 하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정신박약아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론 어려움이 없던 터라 좋다는 병원을 다녔지만 허사였다.
아이의 증세는 점점 심해져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때쯤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이 필자에게 문의해왔다.
무슨 그런 황당한 일이 다 있느냐고...
그 사람들도 모두 독실한 교인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아주 평범하고
순한 성품이란다.
할아버지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성깔이 있고,
옛날에 공직에도 있었고, 주위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데
그 아이에게만은 지나칠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6.25 전쟁을 전후해서 혹시 애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적은 없는지, 재물 때문에 타인을 해한 적은 없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필요이상으로 반응을 하며 펄펄 뛰더라고 했다.
자신을 반성하면 혹시 길이 있을지도 모를 텐데, 역시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그렇게 판단을 했던 것은 과거 전력에 대해서 느끼는바가 있어서였다.
이런 경우 교인이라는 명분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다.
결국, 몇 천 만원을 얹어서 아이는 먼 지방의 어떤 시설로
보내졌고, 그들은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불행은 모두 우리들이 만드는 것이다.
신이 우리를 시험하려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악마가 심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우리들 탓이요, 내 탓인 것이다.
정계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불행을 자주 볼 수 있다.
엄청난 재산을 가졌던 사람들도 불행해지고 후손들은 다시
고난에 빠진다.
왜 그럴까?
왜 그들은 그 권력과 금력으로 좋은 일은 하지 않을까?
왜 후손들의 불행과 자신에게 다시 다가올 불행을 외면하는 것일까?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면 그렇게 산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니 문제인 것이다.
할머니의 방문.
1990년경 필자가 부지런히 유체이탈을 실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꿈에 남루한 차림새의 할머니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할머니였다.
“배가고파요. 나 밥 좀 주시오.”
“할머니는 뉘신데 저를 찾아와 밥을 달라고 하십니까?”
“배가 고파요. 밥 좀 주시오.”
“할머니는 후손도 없어요? 그 사람들이 제사도 지내지 않는답니까?”
“배가 고파요”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작고하신 어머니가 다가왔다.
“그 할머니가 누군지 모르겠니?”
“아, 어머니. 이 할머니는 도대체 누군데 나한테 와서
막무가내로 밥을 달라고 합니까?“
“옛날에 돌아가신 너의 친 할머니시다.”
“예? 이분이 정말 우리 할머니였어요?”
“그렇단다.”
“할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 형님께 말씀드려서 오늘부터 제사를 지낼게요. 만일 형수 때문에 제사를 못 지내겠다면 제가 먹을 밥이라도 드릴게요.”
필자의 조부는 전도사였다.
말이 전도사지 교회도 직책도 없는, 단신으로 전교활동을 하던 분이셨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교회가 없는 타향에 가셔서 열심히 전교활동만을 하셨다고한다.
그러니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할머니 혼자 어떻게 살았겠는가?
제대로 먹이지 못한 자식들은 어린 나이에 차례로 병들어 죽어갔다.
자신과 가족마저 돌보지 않던 조부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역시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났다.
어머니는 얼굴도 보지 못한 시어머니 제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노년에 병들어 형님 댁에 들어가면서부터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다.
형수가 다니던 개신교에서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절대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7, 8년을 보냈고, 어머니가 떠난 후 필자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할머니가 필자를 찾아와 배고프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아침에 일어나 이 황당한 사건을 형님께 전했으나
예상대로 형님은 제사를 모시지 못한다고 하였고,
필자는 부랴부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사상을 올렸다.
이후, 십 년이 넘도록 기일에 제사를 지냈고, 할머니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주린 배를 채우셔서 한을 풀고 명부에 들었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이 끝 날 때까지 제사는 계속할 생각이다.
제4장<전생(前生)과 윤회(輪回) >
요즈음 전생(前生) 여행이란 책이 유행이다.
전생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무슨 TV프로 제목 같다.
TV 에서도 가끔 얘기 거리로 다루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스스로 알기 힘든 분야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물론 윤회(輪回)하기 때문에 전생(前生)도 있고 전 전생(前 前生)도 있고, 당연히 다음생도 존재한다.
믿거나 말거나 있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지금의 생이 일 백 네 번째라는 것도 앞서 얘기한바 있다.
유체 이탈을 실행에 옮겨보는 사람은 그것이(윤회) 사실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윤회설(輪回說) 운운 하고 있는데,
윤회설 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윤회의 법칙을 부정하는데 에서부터
출발한다.
“환생을 한다.” “무슨 근거로 하는 소리냐, 과학적인 증명을 해 보아라.”
이런 논쟁은 하지말자.
서로를 말로써 납득 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논쟁은 장님끼리 귀동냥으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생전 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한 코끼리의 크기나 생김새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윤회의 법칙을 몸소 겪은 사람은 논쟁하지 않는다.
논쟁으로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윤회는 불변의 법칙일 뿐이다.
꼭 전생(前生)을 알 필요가 있을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것이라고 단정한다.
모든 사람들이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회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끔직한
세상이 될 것이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전생에 대해 궁금해 왔다.
그것은 현실에서의 고통이 전생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전생에서 내가 죄를 지어서 현실에서 고통을
받나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전생의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찾아내 어떻게 하든 그 갚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84년경 단편적으로 전생을 구경했다.
구경이 아니라 당시로 돌아가 그 체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죽기 바로 직전의 경험이었다.
당시에 나는 변발한 중국인(中國人)이었다.
필자의 나이 스무 살 전후였고, 어떤 연유로 그런 끔직한 형을 당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팔 다리를 모두 잘린 채로 서서히 죽어갔다.
그 때문에 숨이 넘어갈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고,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니, 기억이 아니라 당시로 돌아가 다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팔 다리가 잘리는 순간 아프지는 않았지만 몹시 시큰거렸다.
팔 다리가 다 잘린 몸뚱이는 수북한 시체더미 위로 던져졌으나
데굴데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양 팔과 다리가 모두 절단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굴러 뺨이 땅바닥에 닿았고, 다른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와 썩은 물이 뺨을 적셨다.
썩는 냄새가 코를 진동했고 의식이 가물가물 멀어져 갔다.
그렇게 하여 죽음을 다시 겪었고, 그리고 높은 하늘을 날았다.
저 멀리 아래로는 넓고 검푸른 바다를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단편적인 전생 체험은 별 의미가 없었다.
전체를 다 알고 싶었다.
어느 나라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든 사실을 다 기억해 내고 싶었다.
그래야만 현실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금생(今生)의 일들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전생을 알려고 그토록 애를 쓰다니.
금생에서의 일을 생각해보자.
10년 전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크게 충격 받거나 심각했다거나 하는 중요한 사실들만
대충 떠오르고 세세한 기억은 없다.
어릴 적 필자가 걸음마를 하다가 화로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덴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방안 풍경이 어렴풋이 보이고 내 앞에 몇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누구인지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가 정확하게 언제쯤인지 알 수 없었다.
서너 살쯤 되었겠지 하고 생각하다 언젠가 어머니께 물었더니
첫 돌 조금 지나서였단다.
겨우 걸음마를 하다가 화로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데었지만,
흉터는 남아 있지 않다.
사실 그 정도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필자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워낙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너 댓 살쯤 되었을 때 형들을 따라다니며 부서진 탱크를 놀이터로 알고 들락거리던 일들도 단편적으로 기억이 날뿐이다.
그래서 자기최면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 가보기로 작정했다.
조용한 어느 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으로 몰입하였다.
맑은 마음으로 들어가자 기억을 스스로 퇴행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을 거슬러 조금씩 과거로 돌아가면서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10년, 20년, 30년, 40년전...
점차적으로 아주 어린아이 시절까지 내 의지로 돌이켜 보았다.
잘 생각나지 않던 것도 보이기는 했으나,
당시의 기억이나 체험을 완벽하게 재생할 수는 없었다.
다음단계는 전생(前生)이었다.
전생(前生)으로 가자고 마음먹었을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힘에 의해서 끌려 들어갔고(깊고 어두운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연이어 소리도 지를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다.
멈출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필설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고통에 휘말려 들어갔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산채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토막토막 잘라내는 고통이라고 해야 하나, 생 다리나 팔을 톱으로 잘라내는 것 같기도 하고,
사금파리로 뼈를 깎아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한동안 지속되던 고통이 끝나고 그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 나왔다.
검은 양복에 금발의 젊은 사내가 다가오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따라갔더니 별로 크지 않은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내가 물었다.
“조금 전의 그 엄청난 고통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이 그렇습니까?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이 그토록 엄청난 것이라면 살아서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참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하고 단숨에 말을 토해냈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명함크기의 하얀 쪽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ooooo ooooo"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가지고 태어날 이름이었습니다.”
“아니, 내 이름은 김 0 0 이지 이것은 아닌데요.”
“당신은 원래 그 이름으로 스웨덴에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 땅에 태어났지요?”
“그쪽에서 거부당했기 때문입니다.”
“거부당했다는 얘기는 무슨 뜻인지...”
“낙태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의 그 엄청난 고통은?”
“그렇습니다. 당신이 시간을 거슬러 왔기 때문에 낙태당시의 고통이
되살아 난거지요.”
“세상에! 그렇게 낙태의 고통이 그렇게 지독하다니....”
나는 경악했고, 나 자신 또한 그런 고통을 누군가에게 준 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속죄했다.
모르고 한 짓이지만 잘못은 잘못이요 죄는 죄다.
이 부끄러운 얘기를 하는 것은 나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줄어들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준엄하게 금지했었다.
세월에 따라 약간 변질된 점이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살인(殺人)이다.
그리고 그것은 천명(天命)을 거역(拒逆)하는 행위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처럼 고통을 겪는다 해도 전생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전생여행이란 책을 통해서 호기심이 부쩍 일었을 것이고, 녹음테이프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행해 보았지만 대부분이 실패했을 것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다니는 작은아들 녀석도 잘 안되더라고 얘기했다.
“아빠, 이거 가짜 아닙니까?”
“이거 엉터리 아닙니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네가 전생을 알아서 어디 쓸려고 그러니? 네가 전생을 꼭 알아야만 할 절실한 무언가 있으면 내가 도와주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네가 전생을 알고자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겠지...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믿거나 말거나 전생은 누구에게나 있었고, 또 삶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내 말을 믿고 너는 네 공부나 해라. 지금은 네가 그런 일에 마음 쓸 시기가 아니다.”
아들에게는 이 정도의 얘기로 진정시키고 말았다.
상대가 학생이라면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러나 꼭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몇 마디 부언하겠다.
가장 확실하게 알고 싶으면 타인 최면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가면 된다.
테이프를 이용해서 실행하자면 방법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이 유체이탈을 실행하는 방법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약간 달라져야 하고 준비상태가 조금 달라져야만 한다.
유체 이탈은 육신을 잠재워야하기 때문에 육신이 잠을 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전생여행을 하기 위한 것은 그래서는 안 된다.
즉, 자기최면을 해야 하는데, 육신이 피로해서 잠을 자려고 할 때에는 실행해 보았자 꿈속으로 빠져버린다.
따라서 전생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충분히 잠을 자 둔 상태에서 실행을 해야 꿈이나 환상으로 빠질 확률이 낮다.
그리고 한두 번 해보고 “에이, 엉터리구나.”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
한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열 번이라도 해서 성공을 해야 하고
그 중에서 한두 번의 성공으로 얻은 결론을 진짜라고 단언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열 번을 성공해도 거의 대부분이 환상이나 꿈을 볼 확률이 높다.
수 십 번을 실행에 옮겨 성공을 하다보면 그 중에서 확실한 것이 잡힐 것이다.
필자도 타인에 의해서 최면을 받아 본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방면에 많은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해결되리라는 것은 안다.
막연하게 자기최면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실망을 할 것이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최면으로 전생의 체험을 일부분 재현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다루는 제작자와 그 과정을 보면서 출연자들이 낄낄거리고, 비웃고 하는 것을 방영하였다.
필자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너무 경박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시술자가 대학교수였는데 그 사람에 대한 예의로써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장난꺼리로 다룰 성질은 더더욱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한다.
자신의 전생을 발견한다는 것은 정신세계의 폭을 넓히는 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을 한 번 보고 나서 “당신의 전생은 왕자였다”, “공주였다”하고 쉽게 단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생년월일만을 가지고 전생을 운운하는 것도 신빙성이 없는 얘기다.
그리고 타인의 전생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생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한 두 번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게 된다.
전생을 깊이 파고 들다보면 언젠가는 짐승으로 살았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다.
그때가 되어야 재미로 짐승을 죽이는 행위 - 사냥이란 얼마나 잔혹한 취미인지 깨닫게 된다고 한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하늘이 내린 특권인줄 착각하여 여자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생에서 여자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경험해야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자신을 무분별한 섹스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짓은 스스로 축생(畜生)이 되는 지름길이란 것을 알아야한다.
백인들은 우월감으로 유색인종을 멸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지방 사람을 멸시하기 잘하고, 동족인 조선족도 무시한다.
양키는 양키라고 멸시하고, 동남아 사람들은 못산다고 무시하고 색깔이 검다고 무시한다.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민족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필자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
무분별한 살생을 하지 마라는 가르침이나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가 심심해서 해본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고 새겨야한다.
그것은 진리(眞理)요 불변(不變)의 법칙이다.
믿어라, 못 믿겠다, 하는 어리석은 논쟁은 하지 말자.
그것은 다 소용없는 짓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비로소 제 것이 된다.
남의 경험, 남의 깨달음은 자신에게는 소용이 없다.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야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길로 가는 중요한 열쇠중의 하나가 유체이탈이요, 전생체험이다.
호기심으로 접근하거나 장난으로 다룰 소재가 아니란 것을 분명히 해두자.
전생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필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아래에 설명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우선, 자기최면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최면을 나름대로 연습해 본 사람들은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나,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최면유도 테이프로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보건데 최면유도 테이프는 최면유도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초보자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잠을 충분히 자두지 않은 상태라면 수면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기최면의 경험이 없는 사람의 경우,
우선 충분히 잠을 자둔 상태에서 시작하자.
테이프를 틀기 전에 편안하게 앉아서 명상을 해보자.
명상하는 방법을 모르면 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한다.
우선,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호흡을 조절한다.
눈을 감은 채 시선을 코끝으로 모은다.
처음에는 눈 근육이 아플 수도 있지만 곧 숙달이 된다.
그 상태에서 자기호흡의 길이에 맞게 호흡을 하되
배나 가슴이 불룩 올라오거나 푹 꺼지도록 호흡량을 늘이면 안 된다.
아주 미약하게 숨을 쉬되 고르게 쉰다.
이때, 하나, 둘, 셋, 넷. 속으로 세어가면서 숨을 쉬어도 좋고,
정신, 통일 . 이런 구호를 마음속으로 불러가며 세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시선의 집중과 호흡의 정숙이다.
5분에서 10분사이면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 정도는 정신집중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최면유도 테이프를 틀어야한다.
최면유도 테이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코끝에 고정시킨다.
시선을 코끝에 두는 것은 중요한일이다.
정신집중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상단전에 기가 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초보자가 단번에 의식을 전생까지 끌어내리기에는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개개인마다 능력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번에 성공할 수도 있고, 여러 번 시도를 해야 가능하기도 한다.
최면유도 테이프로 연습을 여러 번 해보아서 성공했거나
이미 자기최면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굳이 유도테이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해진다.
우선 정신집중을 하고 호흡을 편하게 하여 호흡으로 인한
폐의 움직임이 거슬리지 않게 되면, 아주 편안하게 누운 다음에 온몸을 발끝에서부터 목까지 차근차근히 거슬러 올라가면서 긴장을 풀어나간다.
그 다음에 스스로 의식을 단계별로 퇴행해간다.
예를 들자면 10 년, 20년 이런 식으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의식 상태를 과거로 돌린다.
의식 퇴행이 제대로 된다면 잊어버렸거나 희미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또렷해 질 것이다.
금생의 기억을 거의 다 퇴행이 되었으면 전생으로 가자고 스스로 명령한다.
가장 가까운 전생으로
이 방법으로 전생에 도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1) 온 몸의 긴장을 풀고 근육을 차례로 이완시킨다.
2) 열에서 하나까지 거꾸로 세면서 다 세었을 때에는
팔다리는 물론 머리를 제외한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오직 뇌만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잘되지 않았으면 반복한다. 계속 반복 하다보면 실제로 다른 부분의 감각은 거의 느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3) 눈앞에 이십 계단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라.
그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면 맨 아래에는 문이 있다.
그 문은 전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렇게 암시하고 나서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세어가면서
내려간다.
4) 눈앞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생으로 들어간다고 암시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5)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이 눈에 보이면 자신의 손, 발등을 살펴본다.
6)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사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두 번의 시도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전생체험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가능한 것이다.
여러 차례 시도하다보면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평소에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날 가능성이 많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였고. 그전에 간간이 경험했던 전생의 기억들은 한결같이 남자였고, 연대가 제법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자세히 알아보려고 시도하니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1951년생이다.
가장 가까웠던 전생은 1949년에 사망한 것이었다.
1949년에 사망하고 1951년에 환생한 것이다.
사망 후 환생하기까지의 시간이 고작 이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삼사십 년에서 수백 년까지의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더 놀라운 일은 당시의 나는 여자였던 것이었다.
혹시 잘못 들어갔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십 수 차례 시도하여 확인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기다란 여성특유의 팔과 손. 다리와 발의 모양. 틀림없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국적은 확실히 알 수 없었고 불어와 이태리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의 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있고, 딸이 둘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불행한 시절을 보내고 불행한 방법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더 이상의 접근은 어려웠다.
자기최면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보는 타인최면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어찌되었든, 가장 가까운 전생에 내가 여자였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서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독자여러분들 중에서도 자신의 성(性)이 달라진 것을 경험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좀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 전생을 확인하는 것이 쓸데없고 허무맹랑한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신비로운 어떤 세계를 탐험한다거나, 초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전생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신세계에 대한 아주 작은 열쇠를 갖는 것에 불과하다.
자랑 할 일도, 자부심을 가질 일도 아닌 것이다.
그저 원래 있던 여러 가지 현상 중 지극히 일부를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잡담>
A는 독실한 기독교(개신교) 신도다.
어느 날 A가 물었다.
“전생이 어디 있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는데...“
“성서가 전부는 아니외다.”
“성서가 전부가 아니라니요? 그런 불경(不敬)이 어디 있소?"
“전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생이 어디 있어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단 한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믿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간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또 공평하신 분이라고
하였는데, 같은 처지에 처한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논리에 의하면 하느님은 지독한 심술쟁이에다가
욕심쟁이요.“
“아니? 무슨 그런 불경스런 소리를 합니까?”
“세상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 없이 편하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장애자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세상에 버려져 모진 고통을 받다가 굶어 죽는 이들도 있소. “
“그래도 하느님의 똑같은 축복으로 태어났습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축복이란 자신들만이 선택되었다는 이기심,
자만심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질병과 기아의 고통으로 죽어 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본다면, 더구나 당신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하느님의 축복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
“교회의 역사를 아십니까?”
“.................................”
“성서가 언제 씌어 졌는지 아십니까?”
“.................................”
“성서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씌어 졌는지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성서를 들먹입니까, 당신네 목사에게 물어보면 믿음이 부족해서 엉뚱한 의문을 품는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니 내 말해주리다. 가장 중요한 예수의 행적이 사복음서에 나와 있는 것뿐이니 사복음서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사복음서는 누가 썼는지 아십니까?”
“마태오, 누가(루까), 마가(마르꼬), 요한이 아닙니까?"
"흔히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다르답니다.
예수께서 살았을 때에 숨죽여 지내던 사람들이 삼사십 년이나 지난 후부터 예수의 언행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는데, 불행하게도 모두 작자미상 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히브리어를 몰라서 헬라어(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는데, 헬라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상류 계급이나 랍비등 지식인층이었습니다.
비슷한 연대 우리의 경우를 보면 이해하기 쉽겠지요.
우리는 한자를 사용하였고, 한자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지배계층이었습니다.
예수를 존경하던 그들이(성서 원작자) 예수 사후 삼사십 년이나 지난 후부터 글로 남긴 것은 그들이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썼거나,
그 얘기를(예수의 행적) 전해들은 후세들이 썼기 때문에 나중에 쓴 것은 거의 백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무엇이 겁이 났던지 그들 모두 자신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했던 것도 있고, 말씀만 기록했던 것도 있는데, 말씀만 기록했던 것을 어록(語錄)이라고 합니다.
당시까지 일정한 형식 없이 집회하던 교회는 문서로 된 책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입니다.
당시 초기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해져오는 여러 가지 문서들을 취합하고 교정하여 신약성서를 만들었는데,
마태복음, 요한복음, 하고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4세기경입니다.
예수가 죽은 후 거의 400 년이 흘렀을 때 교회의 지표인 성
댓글목록
<:ARTICLE id=cmt_5079_box>자유인님의 댓글
자유인13-06-30 14:09댓글상단다스칼님,
저만 그런진 모르겠는데 위의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